11인의 태극전사, 최강희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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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일 07시 00분


대표팀 최강희 감독이 태극전사들의 질문에 뛰어난 언변을 과시하며 궁금증을 풀어줬다. 스포츠동아DB
대표팀 최강희 감독이 태극전사들의 질문에 뛰어난 언변을 과시하며 궁금증을 풀어줬다. 스포츠동아DB
국가대표팀 최강희(53)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아, 이제 안 되겠네. 앞으로 내 가발(머리) 갖고 뭐라 하는 놈들은 내 임기 동안 (대표팀에) 소집하지 않는다고 좀 전해주세요.” 물론 농담이다. 위트 있고, 유머가 넘치는 최 감독은 스포츠동아가 마련한 2013년 신년 기획 ‘태극전사 최강희 감독에게 묻다’에서 11명의 선수가 던진 질문을 막힘없이 대답했다.

유일하게 아픔(?)으로 받아들인 대목은 2대8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이 언급될 때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흔치 않은 스타일인 만큼 그의 머리 스타일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속 시원히 대답했다. “안 바꿔요. 절대로…. 영원히 말이야.”

빵!빵! 터지는 위트의 비결은? 한번 써먹으려고 메모 좀 했지!

1. 곽태휘(울산 현대)


-감독님의 위트 넘치는 말은 늘 주변을 빵 터지게 해요.비결 좀 알려주세요. 연예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진행 본능을 살리실 계획은요?

“이 놈아, 연예 프로그램이라니. 날 누가 써준데? 그럴 만한 능력이 안 되지. 사실 어릴 적부터 코미디를 즐겼다. 유머 책이나 만화책도 아주 좋아했는데. ‘아, 이거 좋다’ 싶은 문구들은 조금씩 메모를 했지. 나중에 한 번 써먹으려고. 사실 나도 현역 때는 꼼꼼하고 날카로운 성격이었다. 그냥 긍정적으로 살고 싶어 바꾸려다보니 이렇게 됐네. 훈련 좀 딱딱하게 해볼까?(웃음)”

최강희의 천적? 가족! 난 집에선 완전 찬밥!

2. 정인환(인천 유나이티드)


-감독님의 천적은 누구죠? 인간 최강희, 그리고 축구인 최강희로서.

“천 적이라니? 나 같이 인간성 좋은 사람이 어떻게 적을 만들어? 아, 인간 최강희에게는 무서운 사람들이 있긴 있어. 바로 가족들이야. 난 집에선 완전히 찬밥이야. 그래서 원정이나 시즌 때가 좋아(웃음). 축구인 최강희에게는 특별한 천적은 없어.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냥 라이벌일 뿐, 그라운드에 가면 다 동반자”

팀 화합의 노하우는? 나이 먹으면 생긴단다!

3. 박주호(바젤FC)


-대표팀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뛰던 선수들이 모이는데 화기애애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제자들 마음을 사로잡는 노하우가 궁금해요.

“모 처럼의 진지한 질문이네. 우승 팀은 절대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야 해. 인위적이지 않고, 가식도 없는. 개인 목표가 팀 목표와 일치될 때 최고 시너지가 나와. 런던올림픽에서 홍명보호가 바로 그랬다. 그런 강한 동기부여와 일치된 단결력은 서로의 믿음에서 비롯되지. 분위기 띄우는 건 나이 들면 노하우가 절로 생겨.”

2:8 가르마 고수 왜? 바꾸면 가족이 몰라봐!

4. 윤석영(전남 드래곤즈)

-감독님, 대체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 날 좀 살려줘. 머리(스타일) 바꾸면 집에서 쫓겨나.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고. 젊을 때 파마를 했는데, 경악 수준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옛 머리로 컴백하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심 좀 했지. 영영 이 머리 고수하리라.”

왼쪽수비 제자리인가요? 멀티맨이 돼라!

5. 김영권(광저우 헝다)

-전, 왼쪽 수비수와 센터백 중 어디서 성장할 수 있을까요?(작년 11월 호주 평가전에서 김영권은 왼쪽 풀백으로 뛰다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음, 우리 영권이는 중앙수비가 더 맞지. 사실 왼쪽에 그날 세운 건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 그랬어. 현대 축구는 멀티 능력이 필요한 거 알지? 그건 실수였을 뿐이야.”

분위기메이커 출신? 독도액션만 하겠어?

6. 박종우(부산 아이파크)

-현역 시절에도 그렇게 말솜씨가 좋으셨어요? 혹시 분위기 메이커 출신 아닌가요?


“선 수 때는 정말 말 한 마디 못했어. 무대가 깔리면 덜덜 떨었고. 선배가 되고, 후배들과 팀 미팅할 때야 간간히 지적한 적은 있는데 분위기를 둥둥 띄우진 못했어.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서 딱딱함이 싫어 웃음 좀 유발했을 뿐이고. 아, 독도 말이야. 솔직히 네가 전 국민 분위기 메이커였잖아?”

스태미나 음식은? 전북시절 홍삼 좀 즐겼지

7. 손흥민(함부르크SV)

-감독님께서 즐기시는 스태미나 음식은? 지도자를 하시며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이 녀석, 내가 허약해 보이더냐? 보약 없이도 잘 산다. 전북 감독을 할 때는 홍삼 좀 즐겼지. 피로회복이 아주 빠르더라. 사실 음식을 가리지 않는데, 요즘은 아무래도 나이가 좀 들다보니 육지 동물보다는 바다 동물(생선)을 먹게 되네.”

재미난 멘트 준비? 내가 생긴 게 웃긴 거 아냐?

8. 이승기(광주FC)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요. 미리 준비하시는 것 아녜요?


“헐, 내가 훈련장에서도 웃기냐? 좀 세게 다뤄줄까. 사실 난 준비를 못해. 아니 안 해. 생방송이 되더라도 안 해. 물론 방송 나가면 질문지를 미리 주는데, 차라리 안 보고 들어가는 게 속이 편해. 괜히 대본 주고 그러면 살 떨려. 작년 12월 K리그 시상식 기억나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된다. 그런데 나 대표팀에서는 별로 안 웃긴데. 그러고 보니 생긴 게 웃긴 거 아냐?(웃음)”

행복한 기억? 88올림픽 앞두고 첫 태극마크

9. 김신욱(울산 현대)

-감독님, 지금 머리(스타일) 안 바꾸세요? 선수 시절, 행복했던 기억 좀 얘기해 주셔요.


“수 도 없이 들었던 머리 이야기. 이제 나도 지겹네. 결혼 이후로 거의 평생을 이 스타일을 고수했는데 어떻게 바꿔? 사양하겠고. 선수 시절,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29세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아냐? 88서울올림픽 앞두고 갑자기 대표팀에 소집됐던 그 순간이 너무 기억에 남네.”

벤치선 왜 안웃죠? 네가 말 안들을 것 같아서

10. 이동국(전북 현대)

-평소 그렇게 잘 웃으시다가 왜 벤치에선 안 웃어요? 지도자를 하시며 가장 기쁜 순간과 잊고 싶은 순간은요?


“그 럼, 벤치에서 실실 웃으리? 밖에서처럼? 그럼 너도 말 안들을 것 같은데. 벤치에 있으면 전쟁터에 서 있는 거잖아. 일부러 안 웃는 건 아니고. 이런저런 생각하다보면 경기를 즐길 수 없고, 여유도 가질 수 없지. 2009년 리그 우승했을 때가 가장 좋았고, 잊고 싶은 순간이라면, 내가 수원삼성 코치로 있다가 갑작스레 떠나게 됐을 때? 갑작스런 이별 통보. 누구라도 같은 아픔이 아닐까?”

기억에 남는 도시? 로마·프라하 예술이지!

11. 정성룡(수원 삼성)

-선호하시는 프로리그가 어디에요? 좋아하는 팀도. 해외도 많이 방문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요?


“나 도 일반 팬들처럼 똑같이 해야지. 난 스페인과 잉글랜드가 좋아. 맨유를 사랑하지. 박진감 넘치고 스피디하고. 일단 배울 게 많잖아. 해외는 대개 공부하려고 갔던거라 여행할 여유는 없었는데, 로마와 프라하가 가장 멋진 곳이었어. 그냥 도시 전체가 문화재더라. 예술이고. 아, 파리도 아름다웠지. 아, 너무 많다.”

정리|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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