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브레이크] 불편한 권좌<뜨끈한 아랫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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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30일 07시 00분


한화 차기 사령탑 물망에 올랐던 김성근 감독은 29일 고양 원더스와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재계약으로 김성근 감독은 2014년까지 고양 원더스를 맡는다. 스포츠동아DB
한화 차기 사령탑 물망에 올랐던 김성근 감독은 29일 고양 원더스와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재계약으로 김성근 감독은 2014년까지 고양 원더스를 맡는다. 스포츠동아DB
김성근 감독, 고양과 재계약…막전막후

한화단장 “모든 것 들어 주겠다”구애
프런트 끊임없는 간섭보며 맘 돌린 듯

재계약 4개월 남은 시점서 전격 재계약
고양 허민 구단주와 끈끈한 교감 한몫


김성근(70) 감독이 프로구단 한화의 관심을 뿌리치고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남기로 했다. 고양은 29일 김 감독과의 계약을 2014년까지 2년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부터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 고양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성공적으로 팀을 육성해왔다.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4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계약 2년 연장에 합의했다. 계약조건은 공개하지 않기로 상호 합의한 상황. 다만 고양은 김 감독의 경력과 명성에 맞는 최고 대우를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든 프로구단으로 보내준다’는 조항 삭제

고양이 김 감독에게 내민 첫 계약서에는 이런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프로구단에서 감독직 제의가 온다면 언제든 조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프로야구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감독의 날개를 꺾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양쪽 모두 고양을 ‘종착지’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사인한 계약서는 다르다. 고양 구단 관계자는 “이번에는 감독님의 뜻에 따라 계약서에서 그 조항이 삭제됐다. 2014년까지 팀에 남으시겠다는 의지”라고 전했다. 창단한 지 1년도 채 안 돼 고양 출신 프로야구선수를 4명이나 배출한 김 감독도 “그간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프로야구의 저변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혼신을 다해 선수들을 지도하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계약연장을 앞당긴 이유는?

김성근 감독은 그동안 한화의 차기 사령탑 물망에 올랐다.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이정훈 천안북일고 감독과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이 과정에서 한화 그룹과 구단 고위층이 김 감독을 만나 직·간접적으로 의사를 물은 정황도 포착됐다. 김 감독의 한화행 가능성이 수면 위로 확실히 떠오른 것은 29일. 한대화 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28일 한화 노재덕 단장이 취재진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김성근 감독 같은 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회장님이 쓸 돈은 쓰라고 하셨다”는 의견을 피력한 직후였다. 차기 사령탑으로 김 감독을 못 박은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다는 점을 시인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양 구단 관계자는 “한화의 상황과 별개로 감독님과 한 달 전부터 재계약 협상을 진행해왔다. 상황이 어수선해서 일찌감치 계약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 역시 한화의 뜻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끊임없이 소문이 증폭되는 상황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 결국 29일 오전 결단을 내렸다.

○왜 한화가 아닌 고양이었나?

물론 프로구단 사령탑은 명예로운 자리다.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야구 감독’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무조건 현장에 대한 ‘전권’을 보장받길 원하고, 프런트의 ‘지원’이 아닌 ‘간섭’을 용납하지 못한다. 성적으로 확실하게 능력을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전 소속팀인 SK를 포함한 프로구단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반면 한화는 올해 코칭스태프 교체와 선수단 운영에 프런트가 끊임없이 입김을 불어 넣었다. 감독 경질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야구계에서 “김 감독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후 고양에 잔류하기로 마음을 굳혔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이유다. 반대로 고양 원더스 하송 단장은 “한 시즌 동안 허민 구단주와 김 감독님이 수시로 야구발전에 대한 교감을 나누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동반자 관계가 형성됐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결국 불편한 ‘왕좌’ 대신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택한 듯하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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