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판정 뒤집은 심판마저 “로봇역할 하기 싫다, 집에 가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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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 판정번복 파문… 8강전 맡았던 심판 3명 경기 배정서 제외돼

이겼지만 웃지못한 日 선수 “조준호가 이긴 게 맞다” … 日언론도 심판단 비판

‘백기 올리고 청기 내려.’

야유회 오락 시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올림픽에서 나왔다. 29일 열린 유도 남자 66kg급 8강 경기는 올림픽의 권위를 의심하게 만든 한편의 촌극이었다.

한국의 조준호(24·한국마사회)와 일본 에비누마 마사시(22)는 연장에서도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에비누마가 유효 판정을 받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득점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결국 승부는 심판 판정으로 가려지게 됐고 주심과 부심 2명은 동시에 조준호의 도복 색깔인 청색 깃발을 들었다. 황당한 상황은 이때부터였다. 일본 관객들이 야유를 하는 가운데 본부석에 있던 스페인 출신의 후안 카를로스 바르코스 국제유도연맹(IJF) 심판위원장이 심판들을 불러 모았다. 잠시 뒤 다시 매트 위에 모인 심판들은 나란히 흰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IJF 심판 규정에 따르면 3심에 의해 결정된 것은 최종적이라고 돼 있다. 이번 판정 번복은 상식적인 절차가 무시됐다는 것이 대한유도회의 입장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유도회 조용철 전무는 “40년 넘게 유도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심판위원장 마음대로 판정을 뒤집을 수 있다면 심판들이 매트 위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IJF 대변인은 “심판진의 판결을 뒤집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길 자격이 있는 선수가 승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판정 번복에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난적’ 조준호를 판정 끝에 이겼지만 에비누마는 끝까지 웃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 선수가 이긴 게 맞으며 판정이 번복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외신들의 비난이 잇달았고 당사자인 일본의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심판 3명이 잠깐 논의하더니 처음 판정을 번복했다. 바보 삼총사 영화를 패러디한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닛칸스포츠는 “분위기에 편승한 심판단이 협의해 이례적으로 판정이 두 번 내려졌다”며 “양측 모두에 꺼림칙한 결과였다”고 꼬집었다.

졸지에 ‘바보 삼총사’가 된 심판들도 화가 났다. 브라질 출신의 심판은 “더는 심판위원장의 로봇 역할을 하기 싫다”며 일정을 중단한 채 돌아갈 뜻을 밝히기도 했다. 29일 경기에서 주심과 부심을 맡았던 심판 3명은 30일 계속된 유도 경기 배정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문원배 대한유도회 심판위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판정 번복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문 위원장에 따르면 경기가 완전히 끝나 선수들이 퇴장하기 전까지는 판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면 에비누마의 유효가 취소되긴 했지만 두 선수 모두 득점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 전반적으로는 조준호가 우세했더라도 이 부분(에비누마가 유효를 얻었다 취소된 점)을 판정에 반영해야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유도회는 추가적인 대응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유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보복’이 두려워서다. 일정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심판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이다.

조준호는 30일 기자회견에서 “판정이 번복됐을 때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메달을 따서 정말 기쁘다. 판정은 심판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채널A 영상] ‘조준호 판정번복’ 심판 3명, 경기장서 쫓겨났나


#런던 올림픽#조준호#유도#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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