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D-13]“선수생명 줄어도 런던行… 난 국가대표 주장이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4일 03시 00분


김사니 수술 미루고 올림픽 출전
“4년 전의 탈락 아픔 아직 생생… 36년 만의 메달 위해 뛰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땐 부상으로 빠진 선수들이 야속했어요. 아파서 못 온 건데, 나도 그럴 수 있는 건데….”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김사니(31·흥국생명·사진)는 4년 전 그날을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2008년 5월 24일 도쿄 메트로폴리탄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여자배구 세계예선. 한국은 이전까지 8전 전승으로 압도했던 카자흐스탄에 0-3으로 져 4연속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주장이었던 그는 경기가 끝난 뒤 펑펑 울었다. 위로하러 왔던 관계자들이 놀랄 정도였다.

여자농구는 최근 터키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믿었던 하은주가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1분도 뛰지 못한 상태에서 본선 진출은 쉽지 않았다. 당시 여자배구는 더했다. 김연경(당시 흥국생명), 황연주(현대건설), 정대영(GS칼텍스) 등 주전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에서 올림픽 본선 진출은 무리였다.

올해 5월 도쿄. 4년 만에 다시 열린 올림픽 예선에서 한국은 8개국 중 2위로 런던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세터 김사니는 이번에도 주장으로 코트를 지켰다. 플레이를 할 때마다 어깨에 통증이 찾아왔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에서 아프다고 벤치를 지킬 수는 없었다.

“왼손잡이라 왼쪽 어깨가 아픈 건 오래됐어요. 지난 시즌부터는 오른쪽 어깨도 아픈 거예요. 부랴부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한 뒤 결과를 못 본 채 도쿄에 다녀왔죠. 대회를 마친 뒤 병원에 가 보니 수술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는 2년 연속 ‘연봉 퀸’(1억9000만 원)이다. 부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코트에서 정상이 아닌 몸으로 뛰다 보면 다칠 가능성은 높아진다. 고민을 거듭했다. 수술을 받으면 당장은 뛸 수 없어도 멀리 보면 선수 생명은 길어질 수 있다. 지긋지긋한 통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런던에 가지 말자, 잠시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 상태로 코트에 나서려니 겁이 났어요. 본선 티켓을 땄으니 할 일은 했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주위에서 말렸어요. 같이 고생했는데 끝까지 함께하자고. 여기서 빠지면 후배들에게 평생 미안할 것 같았어요.”

김사니는 이번이 두 번째 올림픽이다. 2004년 아테네에서도 그는 주전 세터였다. 당시 한국은 5위를 차지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5위) 이후 최고 성적이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였나? 배구를 시작한 뒤 그렇게 떨렸던 적이 없었어요. 엄청나게 큰 체육관, 그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손을 덜덜 떨었던 게 기억나요. 사실 그때만 해도 올림픽이란 게 얼마나 큰 무대인지 실감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다르네요. 긴장보다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는 중앙여고 3학년인 1999년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벌써 14년째 국가대표다. 어느덧 대표팀 내에서 최고참급이 됐다.

“운동을 시작한 선수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국가대표’라고 하잖아요. 저도 처음 성인 대표팀에 뽑혔을 때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컸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태극마크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 특히 그랬어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까지 비난받아야 되나 싶었죠.”

국가대표라는 자리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는 그가 태극마크를 고집한 이유는 뭘까.

“시간이 흐를수록 태극마크가 무겁게 느껴져요. 이제는 더 하고 싶어도 못할 나이가 됐죠.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일 거예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열심히 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걸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후회 없이 뛸 겁니다. 36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위해.”

진천=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런던 올림픽#배구#여자배구#김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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