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맛있게 더 꼼꼼하게… 음지의 국가대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2일 03시 00분


“우리도 뛴다” 태릉선수촌 유정형 운영본부장-신승철 검식사-한정숙 영양사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을 위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살림을 챙기는 이들이 있다. 선수촌 식당의 신승철 검식사(왼쪽)와 한정숙 영양사(가운데), 유정형 선수촌 운영본부장.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을 위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살림을 챙기는 이들이 있다. 선수촌 식당의 신승철 검식사(왼쪽)와 한정숙 영양사(가운데), 유정형 선수촌 운영본부장.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며칠 전 훈련장에 축 늘어진 선수가 눈에 띄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에서 금메달을 땄던 정지현(29)이었다. 어린 후배들과 함께 고된 연습을 하는 게 힘겨워 보였다. 그때 박종길 태릉선수촌장(66)은 선수들 앞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팔굽혀펴기를 해 보였다. 그러곤 ‘너희는 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격려했다. 이를 지켜본 정지현의 눈매가 빛나기 시작했다.”》

한국 스포츠의 메카인 태릉선수촌(서울 노원구 공릉동)은 요즘 전쟁터다. 2012년 런던 올림픽(7월 27일∼8월 12일)을 앞두고 선수들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고 견딘다. 세계 203개국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들 태극전사를 위해 ‘음지’에서 힘이 되는 살림꾼들이 있다. 한국 선수단의 관리를 총괄하는 유정형 태릉선수촌 운영본부장(52)과 선수촌 식당에서 조리사를 관리하는 신승철 검식사(51), 한정숙 영양사(48)가 그들이다.

○ 20여 년간 선수 뒷바라지

유정형 본부장은 매일 각 종목 선수들의 기록들을 종합하며 컨디션을 살핀다. 각종 선수촌 살림을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올해는 약 11억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6일 지도자 150만 원, 선수 100만 원, 파트너 50만 원씩을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그는 “각계각층의 작은 정성이 큰 힘이 된다. 선수들의 사기도 어느 해보다 뜨겁다”고 전했다.

유 본부장에게 태릉선수촌은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1985년 대한체육회에 입사해 1991년부터 지금까지 태릉선수촌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런던 대회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쏟는 선수들을 볼 때면 기특함보다 안타까움이 앞설 때가 많다.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선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틴다. 메달 색깔을 떠나 그들은 진정한 애국자다.”

유 본부장은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 10개-종합 10위 이상의 성적을 충분히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대한체육회는 한국 선수단의 경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인 20일 영국 브루넬대에 전지훈련지를 마련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한 이래 첫 시도다. 훈련 파트너까지 함께 간다. 유 본부장은 “선수단을 위해 심리치료사와 트레이너, 의료진 등이 총동원된다. 현지 적응 훈련이 성공하면 예상 밖의 금메달이 쏟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 “가정의 맛으로 기(氣)를 팍팍!”

대한체육회는 최근 배편으로 조리 기구들을 런던으로 보냈다. 식재료들은 현지 한국 식품상을 통해 확보했다. 런던에 머물 한국 선수단의 영양 보충을 위해서다.

태릉선수촌 식당 영양사 10여 명은 브루넬대에서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이고 전복죽 곰탕 등 특식까지 책임진다. 신승철 검식사와 한정숙 영양사는 “런던 훈련지에서 태릉선수촌과 똑같은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태극전사들의 몸 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도록 고국의 맛을 선보이겠다는 거였다.

신 검식사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부터 태릉선수촌의 식단을 맡아왔다. 그는 “선수들이 메달을 딴 뒤 고마움을 전할 때 진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 영양사 역시 1996년부터 태릉선수촌에 머물면서 “아들딸 같은 선수들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할 땐 눈물이 났다. 이들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돕겠다”고 했다. 선수단 뒤에 가려져 있지만 마음만은 국가대표가 돼 있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국가대표#태릉선수촌#음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