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복서-5>주먹으로 세계를 호령한 모범생

  • 동아닷컴
  • 입력 2012년 4월 30일 13시 36분


코멘트

▲동영상=<영광의 복서-5> 주먹으로 세계를 호령한 모범생
“19살 때였는데 상대는 25~26살 된 선수였죠. 생긴 것도 우락부락하고 털도 많이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안그래도 링에 올라와서 긴장되는데 상대를 보는 순간 겁이 나더라구요. 무서웠어요.”

전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가 회상하는 데뷔전이다. 이 경기에서 유명우는 이미 5전의 전적이 있는 최병범을 상대했다. 앳된 외모의 유명우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경기는 36연승의 시작이었다.
‘정직한 복싱’ 꾸준히 훈련했던 노력파 모범생

유명우는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집안 식구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홍수환의 경기를 보며 복싱에 매료된 그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 몰래 복싱 체육관을 찾아갔다. 눈치를 봐가며 한 운동이니 성적이 잘 나올리 만무했다. 아마추어 성적은 1승 3패. 초라한 성적이지만 ‘땀 흘린만큼 링 위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복싱의 진리를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유명우는 ‘정직한 운동’ 복싱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19세의 나이에 프로로 전향했다.
‘노력파’ 유명우 앞에 걸림돌은 없었다. 작은 신장과 짧은 리치를 극복하기 위해 한 발 더 뛰었고, 한 번 더 주먹을 뻗었다. 유명우는 파죽지세로 동양 챔피언과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을 차례로 접수했다. 또 WBA타이틀은 17차 방어까지 성공하며 36연승을 기록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8차 방어 실패, 독을 품은 1년

15차 방어전을 마치고 목표를 찾기 어려워진 유명우는 20차 방어전을 마치고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18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이오카 히로키에게 2-1로 판정패하며 타이틀을 빼앗기고 만다.

“아쉬웠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오래 방어전을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나태해졌던 것 같아요. 힘들면 더 열심히 해서 뛰어넘어야 되는데 요령이 생기니까 스태미너도 전성기만큼 안되고 나이는 먹었고...확실히 느껴지더라구요. 그게 패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지켜왔던 타이틀을 빼앗겼다. 완전 무결했던 전적에도 흠이 생겼다. 그를 영웅처럼 대했던 팬들은 돌변해 타이틀을 일본에 돈받고 팔아먹은 것 아니냐며 손가락질을 했다. 유명우의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죽을 맛이었습니다. 지금 까지 쌓았던 것들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은퇴를 할 까 생각했는데 쉬면서 생각해보니 명예회복은 해야 되겠더라구요.”

이오카가 타이틀을 차지할 경우 3차 방어전을 유명우와 치르도록 하는 옵션이 걸려있어 복수전은 쉽게 성사됐다. 그러나 이오카가 3차 방어 이전에 패한다면 타이틀전이 무산될 수도 있는 일. 다행히 이오카는 유명우의 복수전을 받아줄 때까지 패하지 않았다. 유명우가 이오카에게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오카, 지지않고 기다려줘 고맙다”

유명우는 12회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논란의 여지없는 판정승을 일궈내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한 차례 더 방어전을 치른 뒤 글러브를 벗었다.

링 위의 모범생, 인생에서도 모범생
유명우는 국내에서 대전료를 가장 많이 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세계 챔피언이 되고서는 1억원이 넘는 대전료를 받으며 링에 올랐다. 많은 챔피언들이 은퇴한 뒤 섣불리 사업에 손을 대다 모은 돈을 탕진하곤 하지만 유명우는 착실하게 돈을 모았고 신중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개업하는 음식점마다 대박을 쳤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설렁탕집을 운영할 때는 광우병 파동이 있었고 오리고기집을 열자 조류독감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다운 당하지 않았던 유명우는 사회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꾸준한 노력으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복싱에서 배운 터였다. 그렇게 그는 사업에서도 성공신화를 이어갔고. 주변에서는 그를 성공한 사업가라 불렀다.

“내 마음속 영원한 고향, 복싱으로”
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유명우는 지난해 돌연 복싱계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전 WBA챔피언 홍수환과 함께 신임집행부를 꾸려 한국권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한국 복싱은 바닥입니다. 만약 복싱이 옛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다 무너졌기 때문에 일으키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막상 돌아와서 느낀 복싱계는 암울했다. 법인통장은 잔고가 바닥이었고 지불해야 할 돈은 산더미 같았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아 모든 업무를 백지상태에서 배워나가야 했다. 전임 집행부와의 지리한 법정 공방도 이어졌다. 주변에서는 부와 명예,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유명우가 굳이 망해가는 복싱계에서 골치 아픈 일을 할 이유가 없다며 크게 만류했다. 그러나 유명우는 복싱계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희생할 작정이다.

“복싱에 미쳤습니다. 복싱이 제 고향이예요. 어려서부터 꿈을 먹고, 이뤘습니다. 앞으로 이룰 것은 후배들을 많이 챔피언으로 만드는 거죠. 그걸 이루면 복싱인으로서 영광스러울 겁니다.”

동아닷컴 동영상뉴스팀 I 백완종 기자 100p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