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선수 뽑아라” 회장단 노골적 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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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7시 00분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이 26일 간담회를 갖고 선수 선발과 관련해 축구협회 수뇌부로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올 초 이란과 평가전을 앞두고 파주 NFC에서 선수들과 미팅하는 조 감독의 모습. 스포츠동아 DB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이 26일 간담회를 갖고 선수 선발과 관련해 축구협회 수뇌부로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올 초 이란과 평가전을 앞두고 파주 NFC에서 선수들과 미팅하는 조 감독의 모습. 스포츠동아 DB

대표 선발 외압…누가, 왜?

“수도권팀 B선수 발탁해!
중동원정 2연전 앞두고
축구협 고위층 3명 압력
몸상태 나빠 명단서 빼자
축구협 지원 줄이고 보복”
▶ 조광래 대표팀 전감독

VS

“일본에 0-3으로 완패후
조감독이 풀백 없다 한숨
그래서 월드컵 경험 B 추천
외압 주장은 말도 안된다”
▶ 이회택 축구협 부회장
“부끄러운 한국축구의 자화상이다. 선수를 뽑을 때 외압이 있었다.”

조광래(57) 전 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로부터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청탁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조 감독은 26일 강남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대표팀 사령탑이 외부 입김에 흔들린다면 미래는 더 이상 없다”면서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 권한이지만 거리가 멀었다. 상부의 얘기였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만일 선수 청탁 건이 사실이라면 용납될 수 없는 월권행위로 간주돼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조 전 감독은 자신의 후임으로 온 최강희 감독이 똑같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 선수 선발 간섭하는 협회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중동 원정 2연전을 앞두고 선발 선수를 고민하던 조 감독은 협회 수뇌부로부터 꺼림칙한 얘기를 전달받았다. 고위 인사는 수도권 A구단에서 뛰는 선수 B를 추천했다. 그 때만 해도 괜찮았지만 2명의 고위층이 동시에 조 감독에게 B를 발탁해달라고 또 다시 부탁했다. 이 고위층은 조중연 협회장과 2명의 부회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단칼에 묵살하기 어려웠던 조 감독은 코칭스태프를 소집해 체크 리스트에 올렸고, B의 소속 팀 감독에게 정확한 상태를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답이 나왔다. “아직 대표팀에 갈 정도의 좋은 상황이 아니다”라는 얘기였다. 그 자리에는 황보관 기술위원장도 동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조 감독은 10월 말 중동 원정 최종 명단을 추리는 과정에서 B를 제외했다. 협회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올림픽대표팀과의 선수 조율을 놓고 전임 기술위원장이었던 이회택 협회 부회장과 갈등을 겪은 이후 두 번째 사태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협회와 조 감독은 돌이킬 수 없는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조 감독은 “내가 지휘봉을 잡기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임 감독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냥 추천 받은 선수를 뽑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지만 원칙과 소신이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폭로했다.

협회는 B의 선발이 무산되자 허술한 지원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쿠웨이트와 레바논의 전력 분석을 위해 기술위원 등 스태프의 현지 파견을 요구했으나 예산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작년 남아공월드컵 16강을 일궈낸 허정무 감독(현 인천)도 현지 점검을 협회 측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전례가 있었다. 또 조 감독은 부상과 경고누적을 우려해 엔트리 23명을 25명으로 늘려줄 것을 희망했으나 묵살 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역시 예산 부족이었다.

최강희 감독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선임 기자회견에서 최 감독은 “내 뜻대로 소신껏 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조 감독이 최강희호 체제에서도 협회가 선수 선발을 놓고 좌지우지하려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일찌감치 쐐기를 박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청탁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회택 부회장은 조 전 감독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8월 일본에 0-3으로 패한 뒤 풀백이 없다고 조 감독이 먼저 얘기해 왔다. 그래서 남아공월드컵을 다녀온 B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누가 조광래 감독에게 가서 선수를 뽑아라 말라 할 수 있겠느냐”고 해명했다.
● 코치에게 괘씸죄 적용?

조 감독은 이 자리에서 최근 협회와 잔여 연봉을 놓고 갈등을 빚는 박태하 전 수석코치(현 서울)와 서정원 코치(현 삼성)를 위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협회 김진국 전무는 잔여 연봉 문제로 박 코치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왜 조광래 전 감독의 고별 인터뷰에 참석을 했느냐”고 물었단다. 두 명의 코치들은 조 전 감독이 경질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 동석했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쪽은 협회다. 모든 책임이 협회에 있다. 새 직장을 알선해준 것도 아니다. 재취업과 관계없이 잔여 연봉을 지급하는 건 상식이다. 브라질 국적의 가마 피지컬 코치는 외국인이라 차별을 더 받는다. 감독을 버리고, 아무 죄 없는 코치들까지 협회가 짓밟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진다. 괘씸죄를 적용하는 게 아니냐”고 안타까운 심경을 털어놓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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