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을 키운건 8할이 ‘아버지의 바지바람’이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9월 15일 07시 00분


치맛바람 이전에 ‘바지바람’이 있었다. 고(故)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 씨는 살아생전 아들의 개인코치이자, 후원자, 연봉협상까지 대신하는 대리인, 그리고 제1호 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고한 사실은 최윤식 씨가 없었더라면 전설의 투수 최동원은 없었다는 것이다.

최 씨는 한국전쟁 때 다리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 빈 공간을 의족이 대체했다. 집안의 반대로 포기했던 축구선수의 희망은 그렇게 완전히 날아갔다. 그 상실감을 최 씨는 아들을 통해 보상받으려 했다. 불편한 다리로 온몸을 다해 헌신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1구 1구에 혼신을 쏟았다.

초등학교 1학년 최동원이 처음 쥐고 던져본 야구공을 받아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그 시절에 안테나까지 별도로 설치해 일본 고교야구와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볼 수 있도록 해준 이도 아버지였다. 최동원의 상징이었던 (보통안경보다 시야가 넓다는)안경테를 전국을 뒤져서 찾아준 것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최고 투수가 돼 프로에 입단한 뒤에도 아들을 품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 연봉 협상 때, 아버지가 전면에 나서자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아들은 단 한번도 그런 아버지를 탓하지 않았다. ‘최고의 스타는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200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생전 “너는 주인공이니 욕을 먹어선 안 된다. 안 좋은 것은 내가 다 막아낼 테니”라고 말했다. 아들 최동원은 죽어서도 불멸이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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