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김화성 전문기자의 눈]무모한 도박이 ‘김덕현 부상’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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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김덕현(26)이 끝내 멀리뛰기 결선에 나가지 못했다. 김덕현은 2일 오전 세단뛰기 예선에서 왼쪽 발목을 삐는 바람에(발목염좌) 오후 열린 멀리뛰기에서 메달의 꿈을 접었다. 이로써 한국은 유력한 톱10 종목을 하나 잃었다. 2일 현재 톱10은 남자 20km 경보 김현섭(6위)이 유일하다.

김덕현은 세단뛰기 예선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하루에 세단뛰기와 멀리뛰기를 모두 치른다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세단뛰기의 에너지 소모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김덕현처럼 두 종목을 뛰고 있는 미국의 크리스천 테일러(멀리뛰기 8.19m, 세단뛰기 17.02m)가 왜 ‘한 대회 한 종목 출전’만 고집하겠는가. 우크라이나 드미트리 타이든(7.88m, 17.04m)이나 이탈리아 파브리치오 도나토(7.89m, 17.08m)도 마찬가지다. 두 종목을 하는 선수는 세계랭킹 100위권 중 5명 정도에 불과하다. 15위권 안에는 한 명도 없다.

세단뛰기는 한쪽 발을 두 번이나 딱딱한 구름판에 내디뎌야 한다. 이때의 충격은 500kg이 넘는다. 오죽하면 ‘멀리뛰기를 먼저하고 세단뛰기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세단뛰기를 먼저 하고 멀리뛰기를 나중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까. 더구나 세단뛰기 할 때 두 번 내딛는 발로 멀리뛰기 할 때 발구름판을 밟아야 한다. 500kg 이상의 하중이 또 걸린다. 김덕현의 경우 오른발이 세단뛰기와 멀리뛰기에서 엄청난 하중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김덕현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금메달을 따낸 멀리뛰기에서 다리근육 경련이 온 것이다. 그래도 멀리뛰기가 먼저여서 다행이었다. 김덕현은 이어 열린 세단뛰기에선 5위에 그쳤다.

김덕현의 주 종목은 세단뛰기다.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 결선에 올라 9위를 했다. 멀리뛰기는 세단뛰기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얻은 ‘가외 수입’이다. 하지만 요즘 김덕현의 기록은 멀리뛰기가 훨씬 눈에 띈다. 현실적으로도 멀리뛰기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았다.

김덕현의 세단뛰기 올 시즌 기록은 이번 대회 출전선수 31명 중 22위에 불과했다. 객관적으로 예선 통과가 힘들었다. 1차 시기의 기록을 보고 과감하게 남은 시기를 포기했어야 했다. 김덕현은 세단뛰기 예선에서 3번 모두 파울라인을 밟아 실격했다. 파울라인에 최대한 가깝게 구름판을 밟아야 예선 통과가 가능하기 때문에 도박을 해본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착지 과정에서 왼쪽 발목을 삐었다.

김덕현을 가르쳤던 박영준 한체대 교수는 “안타깝다. 1차 시기를 마치고 미련을 버렸어야 했다. 멀리뛰기는 리듬의 경기다. 왼발과 오른발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구름판에 정확하게 발을 내딛기 어렵다. 설령 부은 다리를 무릅쓰고 뛰었다고 해도 좋은 기록이 나오기는 힘들다. 우선 선수 생명을 생각해야 한다. 내년 런던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덕현의 멀리뛰기 예선 기록은 8.02m. 비록 11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1위 미국의 드와이트 필립스(8.32m)를 제외하곤 해볼 만했다. 2위 호주의 미첼 와트(8.15m)를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의 예선 통과 기록이 김덕현의 최고기록 8.20m에 못 미쳤다. 경우에 따라선 메달도 바라볼 수 있었다. ―대구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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