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 스프린터, 대구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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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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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피스토리우스 ‘대구세계육상 출전의 꿈’

두 다리를 절단한 순간부터 그는 육상 선수가 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프리카공화국)는 종아리뼈 없이 태어났다. 생후 11개월이 됐을 때 아예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장애가 없는 형과 놀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는 승부욕이 강했다. 남들과 다른 다리를 가졌지만 웬만해선 지지 않았다. 의족을 한 채 워터폴로, 테니스, 레슬링 선수로 뛰었다. 고교 때 럭비를 하다 크게 다친 게 육상으로 눈을 돌린 계기가 됐다.

트랙 위의 피스토리우스가 환하게 빛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8세 때인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100m 동메달, 200m 금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렸다. 아이슬란드 회사 오수르가 제작한 카본 섬유 소재의 ‘J’ 모양 의족을 달고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그를 사람들은 ‘블레이드 러너’라고 불렀다.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이 달렸던 그 트랙을 질주하면서 피스토리우스는 장애가 없는 선수들과 경쟁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다리 없는 선수가 장애인 대회가 아닌 올림픽에 도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선수는 대회에서 스프링이나 바퀴 등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어 2008년 1월 피스토리우스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평소 장애인 구역에 주차를 하지 않을 정도로 장애인 특혜를 마다해 왔던 피스토리우스는 체념하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설립한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곧바로 제소했다. CAS는 그해 7월 의족이 기록 향상에 월등한 이점이 있다는 IAAF의 판단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스토리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제도적인 장벽은 걷혔지만 이번에는 기록이 문제였다. 주 종목인 400m에서 올림픽 출전을 원했던 그는 3차례 기회를 모두 놓쳤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1600m 계주 출전도 남아공이 그를 대표팀에 포함시키지 않아 무산됐다.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 4년 전에 비해 훨씬 좋은 기록으로 3관왕에 오른 피스토리우스는 비장애인 메이저 대회 출전의 꿈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년 런던 올림픽에 앞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피스토리우스는 18일 이탈리아 파두아에서 열린 남자 400m 결선에서 46초65를 찍으며 3위로 골인했다. 대구 세계선수권 A기준기록인 45초25에는 1초40이 뒤졌고 자신의 최고 기록인 45초61에도 크게 못 미쳤다. 그는 일반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B기준기록(45초70)은 이미 통과했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 나갈 수 있는 A기준 기록은 아직 넘지 못했다. 남아공에서는 L J 판 질이 A기준기록을 통과했고 피스토리우스 등 3명이 B기준기록을 통과한 상태지만 현재로서는 B기준기록 통과 선수 가운데에서도 피스토리우스의 기록이 가장 뒤진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바람도 심하고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올리며 이틀 뒤 열리는 이탈리아 리냐노 대회를 기약했다.

39일 앞으로 다가온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트랙을 질주하는 ‘블레이드 러너’를 볼 수 있을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실패해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2007년 7월 셰필드에서 주로를 벗어나 실격 처리된 그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장애인 대회가 따로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어 그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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