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지젤, 환희의 연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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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만의 복귀전 65.91점으로 가볍게 1위

안도 미키 65.58점 2위… 아사다 마오는 7위

1만3000여 관중 모두가 숨을 죽였다. 발레곡 ‘지젤’의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13개월 만에 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피겨 여왕’ 김연아(21·고려대)는 음악이 흐르자 지젤로 변했다. 빙판 위에는 피겨 선수가 아닌 사랑을 갈망하며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하는 여인 지젤만이 있었다. 때로는 흐느끼듯 미끄러지고, 때로는 행복에 넘쳐 뛰어다니는 지젤이 빙판 위에 있었다.

여왕이 돌아왔다. 김연아가 29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메가스포르트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 32.97점, 연기점수 32.94점, 합계 65.91점으로 1위에 올랐다. 안도 미키(일본)가 65.58점으로 2위를 차지했고, 3위는 크세니아 마카로바(러시아·61.62점)가 차지했다.

김연아의 역대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는 2010년 밴쿠버 겨올올림픽에서 기록한 78.5점(1위)이다. 역대 네 번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두 번 쇼트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2006∼2007시즌 김연아는 71.95점, 2008∼2009시즌엔 76.12점으로 1위에 올랐다. 부상이 심했던 2007∼2008시즌에는 5위(59.85점), 겨울올림픽 직후에 열렸던 2009∼2010시즌에는 7위(60.30점)를 기록했다. 김연아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면서 대회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늘 강했다. 김연아가 시니어 데뷔 뒤 출전한 19번의 대회에서 13번 쇼트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그중 세 번만 빼고 열 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겨울올림픽 이후 더욱 안정된 연기와 함께 경쟁자들의 부진으로 프리스케이팅에서도 1위에 오를 가능성은 높다.

이날 김연아는 지젤로 완벽하게 분했다. 양쪽 어깨를 드러내고 허리 부분이 파인 가운데 어깨와 가슴에 파란색 보석이 박힌 검은색 의상을 입고 나온 김연아는 음악이 흐르자 바로 지젤로 변신했다.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지젤, 신분 차이를 알고 괴로워하는 지젤, 실연의 아픔에 미쳐가는 지젤, 비록 죽었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지켜주는 지젤로 김연아는 다시 태어났다.

30명의 선수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김연아는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첫 점프 착지가 불안해 두 번째 점프를 뛰지 못했다. 하지만 곧바로 평정을 찾은 김연아는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자신의 명성을 확인해주듯 트리플 플립+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깔끔하게 뛴 뒤 플라잉 싯스핀과 더블 악셀 점프, 레이백 스핀을 차례로 이어 나갔다. 그 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스텝 연기를 격정적으로 펼친 뒤 마지막으로 스핀을 돌며 연기를 마무리했다. 지젤의 격정적이면서도 순애보적인 사랑 연기가 끝나자 관중은 13개월 만에 귀환한 ‘피겨 여왕’과 김연아가 분한 ‘지젤’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연아는 30일 오후 9시 51분 24명 중 21번째에 나서는 프리스케이팅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2008∼2009시즌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2회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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