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도하대회 종합마술중 낙마死 故김형칠씨 조카 김균섭씨 단체전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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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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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작은아버지 이 금메달을 바칩니다”

아시아경기 마장마술 단체전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한국 승마 대표팀 선수들이 14일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신창무 코치, 김균섭(인천체육회), 최준상(KRA승마단), 김동선(한화갤러리아승마단·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황영식(한양대). 김균섭은 4년 전 도하 대회 때 낙마 사고로 사망한 김형칠의 조카다. 사진 제공 대한승마협회
아시아경기 마장마술 단체전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한국 승마 대표팀 선수들이 14일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신창무 코치, 김균섭(인천체육회), 최준상(KRA승마단), 김동선(한화갤러리아승마단·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황영식(한양대). 김균섭은 4년 전 도하 대회 때 낙마 사고로 사망한 김형칠의 조카다. 사진 제공 대한승마협회
햇살 때문에 가만히 서 있어도 피부가 타는 듯 뜨겁다. 이런 땡볕에 말을 탄 선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 20여 분간 ‘다크 시크리트’에 올라 연습하면서 김균섭(29·인천체육회)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긴장감 때문에 몸이 젖은 줄도 몰랐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다. 경기 복장인 연미복을 신창무 코치에게서 받아 셔츠 위에 걸쳐 입는 짧은 시간 동안 지난 4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에 힘을 주며 입을 앙다물었다. 14일 광저우 승마장에서 열린 아시아경기 마장마술 단체전. 한국 대표 4명 중 한 명으로 출전한 그에게 이번 대회는 긴장감과의 싸움이었다. 한국 선수론 두 번째로 나서 5분 30여 초간의 연기를 끝냈다. “4년 전 그 일 때문에 더 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면 더 긴장하게 되니까 좋지 않죠.”

2006년 12월 7일. 그날의 충격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종합마술에 출전했던 작은아버지 김형칠이 말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는 황망한 소식이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장례식 사진에서 영정을 들고 눈물을 쏟던 청년이 바로 김균섭이다.

김균섭은 승마 가족으로 유명하다. 할아버지 김철규 씨(작고)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승마 대표 선수였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할아버지의 승마장을 관리하기도 했던 아버지 김성칠 씨는 인천승마협회 전무이사다. 김균섭은 세종초등학교 6학년 때 승마를 시작했는데 작은아버지 김형칠이 그를 지도했다. 조카이지만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작은아버지와 조카는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종합마술 단체전에 함께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2006년엔 대표 선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다 작은아버지가 4위로 대표가 됐고 김균섭이 선발전 5위로 탈락했다. 그랬기에 김균섭은 충격과 죄책감이 더 심했다. 자신이 더 열심히 해 대표가 됐으면 작은아버지의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

충격으로 잠시 말을 멀리했던 김균섭은 다시 말 위에 올랐다. 이번엔 작은아버지가 따지 못한 금메달의 한도 함께 풀기 위해서였다. 김균섭의 전공은 종합마술이지만 대표팀에서는 금메달 가능성이 높은 마장마술로 바꿨다. 한국은 대여 말을 사용했던 1994년 히로시마 대회와 아예 종목이 없었던 1990년 베이징 대회를 제외하곤 1986년 서울 대회부터 마장마술 단체전 금을 휩쓸었다.

김균섭은 올 초 마장마술을 위해 말도 새로 사들였다. 지금의 다크 시크리트다. 장애물을 뛰어넘는 종합마술에 비해 섬세한 연기를 해야 하는 마장마술은 말 가격이 3억 원을 넘는다. 힘든 훈련 끝에 7월 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당당히 대표선수가 됐다. 그때 작은아버지가 묻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태극마크를 단 소식을 알렸다. 이번에 광저우로 출발하기 직전에도 그는 현충원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이런저런 상념은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 어느새 말과 혼연일체가 되면서 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 대표팀 네 번째 선수인 최준상(KRA승마단)의 연기로 이날 경기는 모두 끝났다. 한국은 김동선(한화갤러리아승마단) 황영식(한양대) 등 팀원 4명 가운데 상위 3명의 평균 점수에서 65.759%를 얻어 중국(65.593%), 말레이시아(65.111%)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김균섭은 61.778%로 한국 선수 중 4위였고 전체 22명 중 17위. 순위가 낮아 개인전 준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는 “연기를 마치고 작은아버지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작은아버지의 금메달 한을 풀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쁘고 또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긴장감으로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엔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다.

광저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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