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박태환, 박태환을 이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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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200m 아시아 신기록 금메달

출발부터 줄곧 선두… 자신의 기록 0.05초 당겨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말, 연습 때 기록이 역대 최고치에 이른다는 말,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말. 모두가 사실이었다. 한국 수영 최고 스타 박태환(21·단국대)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1년 넘게 짓눌려 온 부담감에서도 벗어났다.

14일 광저우 아오티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광저우 아시아경기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박태환은 출발 신호와 함께 선두로 치고 나가 레이스 내내 선두를 지킨 끝에 1분44초80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때 자신이 세운 1분44초85의 아시아기록을 2년 만에 0.05초 경신했다.

○ 완벽한 레이스, 경쟁자는 없었다.

박태환에 이어 2위로 골인한 중국의 쑨양(1분46초25)은 “최선을 다했지만 박태환과는 따라잡을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쟁자가 인정했을 정도로 박태환의 레이스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박태환은 출발 속도 0.67초로 쑨양(0.79초)과 3위 마쓰다 다케시(0.72초)를 앞섰다. 라이벌 장린(4위)보다도 0.07초 빨랐다. 그는 첫 50m 구간을 24초78로 통과하며 경쟁자들의 기를 꺾었다. 나머지 50m 구간 기록은 100m까지 26초61, 150m까지 26초64, 200m까지 26초77이었다. 50m 구간 기록에서 1위를 놓친 게 50∼100m 구간 한 번이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박태환은 오전에 열린 예선에서 1분49초15를 기록해 전체 3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쑨양(1분47초85)과 장린(1분48초86)에게 뒤지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었다. 박태환은 “예선 1위를 하게 되면 4레인에 배정돼 2위(5레인)와 3위(3레인)를 양옆에 두게 돼 혼자 달리려고 조절을 했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예선 출발 반응 속도(0.68초)와 첫 50m 구간 기록(25초53) 모두 1위였지만 페이스를 조절했다.

○ 완벽한 부활, 다관왕 시동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19세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친 부담. “수영을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했을 정도로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 결국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출전 종목(200m, 400m, 1500m)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하는 추락을 맛봤다. 이후 쏟아진 비난 역시 버거웠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는 1월 호주의 마이클 볼 코치를 전담 코치로 맞이했다. 박태환은 호주 전지훈련을 통해 수영하는 즐거움을 되찾았고 자신감도 회복했다. 그는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맞춰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겠다고 했고, 보란 듯이 실현했다. 국제수영연맹이 ‘기술 도핑’ 논란이 제기됐던 첨단 소재의 전신 수영복을 올해부터 금지하자 그의 역영이 더욱 돋보이는 것도 고무적이다. 전신 수영복이 유행처럼 번질 때도 박태환은 기존의 자기 스타일을 고수했고 전신 수영복이 퇴출되자 더욱 빛을 발하며 결국 자유형 200m에서 올해 세계 최고기록을 작성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출발을 한 박태환의 메달 행진은 이제부터다. 주 종목인 자유형 400m(16일)를 비롯해 자유형 100m와 1500m 그리고 단체전인 계영 400m, 계영 800m, 혼계영 400m에 출전해 메달 사냥에 나선다.

광저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박태환 일문일답
“컨디션 최상… 남은 여섯 종목도 최선”

자유형 남자 200m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박태환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서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자유형 남자 200m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박태환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서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커다란 헤드폰을 낀 채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 차분하게 출발대의 물기를 닦는 모습, 담담한 표정, 레이스를 마친 뒤 두 손을 높이 들며 포효하는 모습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박태환의 표정에는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에 결연함이 묻어났다.

―오늘 결과에 대해 총평을 하자면….

“기록이 너무 좋아 기분이 좋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첫 종목을 마무리했다.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나머지 경기에 임하겠다.”

―라이벌 쑨양, 장린 등의 레이스를 평가하면….

“경쟁자들과 순위에 상관없이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레이스를 못 봤기 때문에 그들의 레이스에 대해 말하는 건 건방진 것 같다. 그들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것이다. 쑨양은 경쟁심이 무척 강한 선수였다. 옆을 봤는데 계속 쫓아와서 계속 도망쳐야 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광저우 아시아경기 금메달까지, 중국과는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정말 좋은 인연인 것 같다. 중국에서 좋은 기록이 많이 나왔다.”

―앞으로 남은 경기 계획은….

“아직 여섯 종목이 남았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자유형 200m만큼이나 400m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100m, 1500m도 아주 중요한 경기다. 일단 400m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노력하겠다. 단체전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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