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에 만족…” 소박했던 SUN의 야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7시 00분


가을야구는 사실 전쟁이다. 타자들은 몸에 맞는 것을 각오하고 타석에 바짝 붙고, 투수들은 그런 타자들을 향해 어김없이 위협구 또는 표적구를 날린다. 가을이면 야구선수들은 전장의 군인이 된다. 그런 선수들을 지휘하는 감독은 장수나 다름없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페넌트레이스 막판부터 줄곧 “올해는 2위면 대성공이다”, “1위 욕심은 없다”, “2년 만에 다시 가을잔치에 나온 걸로 만족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였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도중에도 “우리 선수들이 올 가을 많은 경험을 쌓기를 바란다”며 승패에 초연한 듯한 태도를 견지했다.

사실 시즌 초반부터 오승환 윤성환 박진만 등 투타의 기둥선수들이 잇달아 부상과 부진으로 전열을 이탈한데다 세대교체라는 험로를 큰 무리 없이 헤쳐나온 점을 고려하면 결코 허언은 아니다.

그러나 선 감독의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이런 발언들은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기회는 매번 오는 것이 아니다. 또 2년후 우승이 목표라는데, 우승이 수학공식처럼 계산한 대로 정확히 답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전장에 나서는 병사들을 앞에 놓고 장수가 할 성질의 발언은 아니다. 이에 따라 SK에 1차전을 패하면서 삼성 선수들 사이에서 ‘2위로 만족하는’ 분위기가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모습이 포착됐다.

선 감독은 2005년 사령탑 첫해에 대뜸 우승을 차지한 뒤 일본에서 열린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 출전하면서도 일본 대표 지바롯데와의 대결에 대해 ‘한수 배우겠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그에 맞춰 목표 또한 높여 잡거나 새롭게 동기를 부여하는 처방은 두말하면 숨가쁜 얘기다.

대구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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