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우승 주역’ 이정은, 부모가 말하는 장한 내딸] “정은이 다섯살 때 축구에 마음 뺏겨”

동아닷컴 입력 2010-09-28 07:00수정 2010-09-2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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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아버지 이병진 씨(왼쪽)와 어머니 김미자 씨가 딸의 축구일기를 들춰보며 추억에 젖어들고 있다.창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모녀는 한참을 수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침묵, 그리고 또 침묵.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결국 참다못한 어머니가 먼저 운을 뗐다.

“우리 딸, 뭐 해줄까?” “엄마, 나 된장찌개 먹고 싶어.”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선 전혀 먹지 못했어?” “아니, 그래도 엄마가 해준 게….”

연장전 120분 혈투도 부족해 ‘서든데스’ 승부차기로 이어진 한국과 일본의 U-17 여자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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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딸은 온탕과 냉탕, 천당과 지옥을 쉼 없이 오갔다.

모두가 트리플 크라운(우승, 득점왕, MVP)을 달성한 여민지(17)를 주목했으나 결승전 선제골의 주인공인 미드필더 이정은(17·이상 함안대산고) 또한 주연이었다. 스포츠동아는 태극소녀들이 기적을 창조했던 9월 26일 늦은 밤, 경남 창원 동읍 무성리에 위치한 이정은의 집을 방문했다.

이정은도 여민지와 마찬가지로 꼼꼼하게 축구일기를 썼다. 스포츠동아가 입수한 그의 축구일기. 훈련 프로그램이 영어로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감동의 여운이 조금은 가실 무렵, 이정은 어머니 김미자(51) 씨가 한참 만에 수화기를 들었다.

“제가 필드를 누빈 것 같아요. 딸이 아프니까 저도 아프네요.”

조금은 갑작스러웠던 자택 방문. 얼굴은 여전히 붉게 상기돼 있었다.

창원 명서초등학교에서 응원전을 펼친 어머니와 달리 함안대산고에서 따로 “대∼한민국”을 외친 아버지 이병진(51) 씨 역시 늦은 잠을 청하다말고 곧바로 방에서 나와 자리에 동석했다.

부모는 정말 평생에 한 번 경험할만한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대표팀 배번 6번 이정은은 자신의 등번호처럼 정확히 킥오프 6분 만에 첫 골을 넣었다.

“뭘 얘기하겠어요. 부모는 알아요. 자식이 뭘 하든지. 슛을 했을 때, 딱 느낌이 왔어요. 아, 골이구나!”

딸과의 전화통화는 조금 늦게 이뤄졌다. ‘동료들과 기쁨을 만끽하느라 연락이 늦어졌구나’라는 생각에 이해는 됐지만 내심 서운했다. “엄마도 이렇게 아팠는데, 우리 아기가 좀 더 빨리 연락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모녀, 부녀의 대화는 삼겹살과 된장찌개로 이어졌다.

딸은 어머니의 ‘집 밥’부터 타령한다. 아직은 17세 소녀. 초록 필드를 펄펄 누비던 여전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승부차기 얘기는 서로가 피했다. 한국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딸이 실축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 아빠 미안해. 그래도 나 챔피언 먹었다”고 했고, 딸의 목소리를 듣고 한참 흐느끼던 부모는 “괜찮아. 충분히 잘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고 해줬다. 서로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아버지 이 씨는 “딸이 실축할 때도 담담했다”고 했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정은의 집에 소중히 보관된 창원 명서초 시절 유니폼.

○ 결승전 전날 황소 꿈 꾼 어머니

5세 때 부모와 시내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던 딸이 갑자기 사라졌다.

한참을 헤매던 중 딸이 발견된 곳은 마트 체육센터 진열장이었다. 축구공을 한참 바라보던 아기.

만 원짜리 싸구려 볼을 쥐어준 뒤에야 비로소 딸은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어릴 때부터 꼬마 대장이었어요. 유난히 바지를 좋아했는데, 호주머니가 많아야 흐뭇한 표정을 지었어요. 오른쪽엔 장난감 권총을, 왼쪽엔 팽이와 구슬을, 한 손에는 비밀 봉지에 싸여진 축구공이었죠. 그게 딸 패션이었죠.”(어머니)

“우리 딸은 완전 남자였죠. 태권도도 못하는 게 도복을 차려입고, 동네 남자 친구들을 혼쭐내는데,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혹시 남자였나?”(아버지)

어머니는 일본전을 앞두고 커다란 황소가 품에 안기는 꿈을 꿨다.

이미 승리는 예고돼 있던 셈이다. 첫 골을 넣는 순간, 잔뜩 묵혔던 가슴 속 응어리가 모두 풀렸다던 아빠도 “축구를 위해 명서초로 전학을 가기 전, 처음 담임선생님이 딸 일기장에 글을 남겼는데, ‘10년 후 정은이는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하는 최고의 여자 선수가 된다’고 했다. 꿈이 이뤄졌으니 행복할 따름”이라고 했다.

한 가지 비밀. 딸이 그 때부터 곧바로 사인을 연습했다나?

이정은은 매일 축구일기를 썼다. 명서초 배성길 감독 권유 때문이었다. 언젠가 안종관 전 여자대표팀 감독도 이정은의 일기를 보곤 깜짝 놀랐다고.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모든 정성이 담겨 있었다.

어떤 페이지는 온통 영어였다. 축구 용어가 대부분이었으나 일반인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다.

그의 축구일기에는 작년 11월 쓰라린 아픔도 담겨 있다. 불의의 왼쪽 발목 부상, 12월 6일 수술을 시작으로 이어진 기나긴 재활. 이정은은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다. 남들은 4∼5개월 소요될 치료 기간도 불과 100여 일로 줄였다. 아팠지만 딸은 참아야 했다. 꼭 한 가지 어머니와 엄지손가락을 걸고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나, 월드컵에 꼭 가야해. 우리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이정은) “너희들이 잘해줘야, 후배들이 잘되고, 여자 축구가 잘될 수 있어.”(어머니)

17세 소녀들이 기적을 창조했던 9월 늦은 밤, 딸의 축구일기와 앨범들을 뒤적이던 부모의 표정은 한가위 보름달처럼 한 없이 밝았다.

창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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