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의 열린스포츠] 양준혁의 눈물이 위대한 이유

동아닷컴 입력 2010-09-24 07:00수정 2010-09-2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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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은퇴경기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는 양준혁. 스포츠동아 DB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준혁(사진)이 19일 SK전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무리했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양준혁의 은퇴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한 추억이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에.

이만수, 이승엽과 더불어 그는 삼성의 아이콘이었다. 대구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그에게는 ‘엄마의 품’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32년 전 처음 대구구장에서 초등학교 선수로 데뷔했고, 마지막을 대구구장에서 끝냈다. 18년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통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1만여 팬의 환호와 아쉬움 속에 ‘대장정’을 마무리한 양준혁. 필자가 보기에 그는 ‘평범’했기에, 오늘날 한국프로야구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됐다.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한지 이미 두 달,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그가 이룩한 기록이나 업적을 조명했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가 프로에 입문하기 전부터 봐왔기에 그의 ‘18년 대장정’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뿐이다. 1988년 대학 신입생이던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그냥 ‘원석’에 가까웠다. 대구지역에서 야구를 좀 하기는 했지만 청소년대표 출신도 아니고, 하드웨어가 괜찮아 단지 장래성 있는 선수에 가까웠다. 대학시절에도 괜찮은 기록을 남긴 것은 사실이나 아마추어 국가대표에도 자주 선발되는 선수는 아니었다. 당시 건국대의 추성건과 1루에서 쌍벽을 이루는 정도였다.

최동원, 선동열, 장효조, 이종범 등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에 비하면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노력형의 범주에 넣기도 1% 부족하고, 근성이 강하거나 통솔력이 뛰어나 리더십이 대단하다고 추앙받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한국프로야구 대부분의 타자 통산기록을 모두 갱신했다. 물론 언젠가는 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의 통산기록들을 누구도 폄하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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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도 다른 스포츠처럼 천재적 재능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종목들처럼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왜? 야구는 게임수가 많다는 것이 다른 종목과 기본적으로 차별화되고 있다. 이치로도 오릭스 시절 몇 년의 2군 생활을 거쳤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처럼 10대와 20대 초반에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오래 선수생활을 위해서는 ‘자기관리’가 필수적이고 ‘자기철학’을 완성하지 못하면 롱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종목이다. 양준혁이 위대한 건 매일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고, 30대 중반 이후엔 ‘세월’과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이다.

양준혁이 다른 선수와 대별되는 점은 ‘야구를 참 좋아한다’는 것이다. 즉 야구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남다른 선수였다. 어쩌면 그의 야구인생은 열정 하나로 버텨온 세월이었는지도 모른다. 은퇴식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양준혁. 수많은 팬들은 그가 이룩한 위대한 기록보다도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그의 ‘인내’를 더 기억할 것이다.

‘평범’했기에 위대했던 양준혁. 그런 양준혁을 보며 팬들은 또 다른 자기를 느낀다. ‘위대한 영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을 함께 했던 ‘선산의 굽은 소나무’의 퇴장이기에 더 애잔하다.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끝까지 싸워준 양준혁, 마지막으로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하던 그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양준혁, 아듀!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경구를 좋아한다. 스포츠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현실과 로망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로망과 스포츠의 '진정성'을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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