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거 野]야구장에서 생긴 일은 야구장서 끝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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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빡할 사이였다. 타석에 있던 롯데 조성환이 헬멧을 감싼 채 주저앉았다. 마운드에는 KIA 윤석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24일 롯데와 KIA의 사직 경기. 5-7로 뒤진 롯데의 9회말 2사 후 공격에서 윤석민의 초구는 조성환의 머리를 향했다. 9일 전. 윤석민은 광주에서 롯데 홍성흔의 손등을 맞혔다. 당시 타점과 안타 선두였던 홍성흔은 이후 벤치를 지키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기치 못한 일로 다 잡은 타이틀을 놓친 홍성흔은 윤석민을 원망하지 않았다. ‘대인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조성환도 마찬가지였다. 뇌진탕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내 몸보다 윤석민이 걱정된다”며 되레 후배를 챙겼다.

그러나 파문은 크고 오래갔다. 윤석민은 선배들의 걱정과 달리 괜찮지 못했다. 그라운드에 홀로 서서 엄청난 야유를 감내해야 했던 24세 청년은 이튿날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고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때린’ 윤석민과 ‘맞은’ 홍성흔-조성환 사이에 앙금은 없어 보이지만 롯데 팬들과 KIA 팬들의 감정싸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롯데 팬들은 윤석민이 고의로 그랬다는 의심을 여전히 품고 있다. 각종 야구 관련 게시판에 ‘홍어’라는 표현을 써가며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 KIA 팬들도 할 말이 많은 듯하다. 24일 윤석민이 두 차례 모자를 벗고 사과했는데도 경기가 끝난 뒤 KIA 김선빈 등이 관중에게 폭행당한 데 흥분해 ‘자갈치’라는 표현을 써가며 맞대응하고 있다. 물론 두 팀 모두 일부 팬 얘기다.

프로야구가 이만큼 발전한 데는 ‘긍정적인 지역감정’, 곧 애향심이 절대적이었다. 이런 애향심이 다른 지역에 대한 비하와 모독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홍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자갈치’라는 말로 상대를 모욕하는 팬들이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조성환은 “야구장에서 일어난 일은 야구장 안에서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흔도 윤석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조성환은 29일부터 타석에 섰다. 홍성흔도 이르면 이번 주말 복귀할 예정이다. 윤석민이 하루빨리 마운드에 서길 바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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