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스타, 그들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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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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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축구 빅3, 1차전 부진 털고 기지개
골 욕심 버리고 도우미로 팀 승리 이끌어

남아공 월드컵을 대표하는 ‘판타지스타’ 리오넬 메시(23·아르헨티나), 카카(28·브라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5·포르투갈).

이름만 들어도 짜릿하다. 판타지스타(fantasista)란 다재다능한 예술가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축구에서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에게 붙는 영광스러운 칭호다. 월드컵 초반 부진에 빠졌던 판타지스타들이 드디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나 홀로 플레이’를 할 때가 많았다. 나이지리아전에서 메시는 수차례 위협적인 슈팅을 날렸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 카카는 북한의 벌떼 수비에 꽁꽁 묶였고, 호날두 역시 0-0 무승부를 거둔 코트디부아르전에서 무리한 슈팅만 날리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차전에서는 달랐다. 메시는 한국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카카는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어시스트 2개를 기록하며 3-1 승리에 공헌했다. 호날두 역시 북한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7-0 대승에 일조했다.

이들은 그동안 소속팀에서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호날두는 유로2008 이후 A매치에서 16개월 동안 골을 넣지 못했다. 카카와 메시도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이상하리만치 부진에 빠졌다. 동료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았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이 든 탓이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비결은 마음을 비운 데 있었다. 2차전부터 이들은 무리한 나 홀로 플레이를 지양하고, 동료들을 도와주는 역할에 치중하며 팀 전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한국전에서 메시는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동료들과 패스를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수비진에 둘러싸이면 무리한 드리블을 하지 않고 재빨리 빈 공간으로 공을 내줬다. 메시에게 패스가 집중될 것이라는 예상을 깬 플레이였다. 어시스트 기록은 없었지만 4골 모두 메시의 발끝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카카도 코트디부아르전에서 2선에서 ‘킬 패스’를 날리며 루이스 파비아누와 일라누의 골 잔치를 도왔다. 호날두 역시 북한전에서 측면에 빠져 있다 전방으로 침투하는 동료들에게 반 박자 빠른 크로스를 날리는 데 집중했다. 후반 15분 왼발 땅볼 크로스로 티아구의 골을 도운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날 경기 MVP로 호날두를 선정하며 “폭 넓은 시야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축구 황제’ 펠레는 현역 시절 화려한 개인기와 함께 8개의 눈을 가졌다는 칭찬을 들었다. 넓은 시야로 동료들을 도와주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다. 독불장군처럼 개인플레이만 펼치던 남아공 월드컵 스타들도 마음을 비우자 명성에 걸맞은 활약이 나오기 시작했다. 팬들의 마음은 되살아난 이들의 환상적인 플레이 속에 환호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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