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리포트] 국경 초월한 네덜란드 관중의 응원 이것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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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7시 00분


24일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만미터 경기에서 이승훈이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플라워세리머니에서 은메달리스트 러시아의 스코브레프와 동메달리스트 네덜란드의 봅 데용이 무동을 태우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만미터 경기에서 이승훈이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플라워세리머니에서 은메달리스트 러시아의 스코브레프와 동메달리스트 네덜란드의 봅 데용이 무동을 태우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판에 ‘새 올림픽 기록(New Olympic Record)’이라는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24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관중석 대부분을 메운 네덜란드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열렬한 오렌지빛 기립박수의 물결이 넘실댑니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얻은 선수에 대한 헌사였죠. 하지만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연습주로를 도는 선수는 오렌지빛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검정색과 파란색이 섞인 대한민국 유니폼. 막 1만m 레이스를 펼친 이승훈이었습니다.

사실 경기 도중부터 아름다웠습니다. 이승훈의 상대는 다름 아닌 네덜란드의 아르젠 반 데 키에프트. 세계기록 보유자 스벤 크라머의 뒤를 이을 차세대 기대주랍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온 무명 선수 이승훈은 초반부터 차원이 다른 레이스를 펼칩니다. 급기야 5600m 구간을 7분15초54로 통과하자 장내 아나운서가 흥분합니다. “이승훈 선수, 지금 올림픽 레코드 페이스로 달리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한국 기록 보유자”라고만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2위와의 격차를 점점 벌려가자 다들 놀란 겁니다. 그 때부터입니다. 네덜란드 관중들이 이승훈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적에 관계없이, 한 선수의 인상적인 레이스를 격려하려는 의도인 듯 했습니다. 심지어 레이스 막판에 이승훈이 키에프트를 한 바퀴 추월하자 “와아” 하는 응원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 기자들마저 어리둥절할 만큼 열렬한 환호였답니다.

네덜란드는 스케이트를 사랑하는 국가입니다. 리치몬드 오벌은 늘 오렌지색 상의를 입은 관중들로 가득 찹니다. 동계올림픽에서 네덜란드 선수들을 응원하는 건, 이들에게 4년에 한 번만 찾아오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들에게 명승부를 보여준다면 (비록 네덜란드 선수를 꺾는다 하더라도) 진심어린 박수를 보낼 준비가 돼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그랬습니다. 네덜란드의 자랑 스벤 크라머의 실격이 발표된 후, 관중석은 잠시 얼음처럼 얼어붙었습니다. 그러나 금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이 태극기를 흔들며 다시 링크를 돌자, 서서히 박수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빙속 역사를 다시 쓴 우리 선수에게도 고맙지만, 네덜란드 관중들의 ‘올림픽 정신’에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하루입니다.

밴쿠버(캐나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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