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금메달 따던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4일 2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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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m 국제경기는 사실상 오늘이 데뷔전이라…."

24일 새벽 4시경 서울 중구 예장동 이승훈(22)의 큰아버지 집. 가족들과 함께 이승훈의 경기를 기다리던 아버지 이수용 씨(52)는 덤덤했다. 이승훈이 스피드스케이팅 1만 m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은 지난달 10일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에서 열린 세계 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이 처음이었기 때문. 이 씨와 부인 윤기수 씨(48)는 "유럽 선수들과 1만 m를 경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훈이 올림픽신기록으로 결승점에 들어왔을 때도 이 씨 부부는 "남은 조 선수들을 더 두고 봐야한다"며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훈보다 4초 앞섰던 스벤 크라머(24·네덜란드)가 실격 처리되자 가족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씨 부부는 "올림픽 금메달은 정말 하늘이 주는 것"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누나 이연재 씨(24)도 "밴쿠버에 가기 전 승훈이가 '1만 m가 더 자신 있다'고 말했는데 진짜 우승할 지는 몰랐다. 동생이 너무 의젓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1995년 서울 리라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승훈의 열정은 누구도 못 말렸다. 1998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이승훈을 매일 훈련장까지 실어 날랐던 차까지 팔았다. 스케이트를 계속 시키기에는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 이승훈은 "혼자서라도 훈련장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새벽마다 버스를 타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아버지는 중고차를 구입해 다시 뒷바라지에 나섰다. 이 씨는 "아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쇼트트랙 유망주로 각광받던 이승훈은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위기를 겪었다. 방황하던 이승훈은 갑자기 "스피드스케이팅을 하겠다"고 선언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지난해 7월부터 다시 몸을 만들어 10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불과 넉달 만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 씨 부부는 "늘 '할 수 있다'고 말하던 승훈이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라며 감격해 했다.

유성열기자 ryu@donga.com


▲ 다시보기 = 빙속 이승훈, 1만m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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