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볼 터치… 수비는 곳곳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8일 03시 00분


한국 본선상대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 잠비아와 비공개 경기 단독 취재

《6일 오후(현지 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킹스파크 스타디움. 1990년대 세계 축구계를 호령한 녹색 유니폼을 입은 전사들이 그라운드 안에 들어섰다. 이 경기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 팀 관계자 40여 명을 제외하곤 관중석이 썰렁했다. 하지만 녹색 전사들의 존재만으로도 경기장은 꽉 찬 느낌이었다. 존 오비 미켈(23·첼시), 야쿠부 아이예그베니(28·에버턴), 은완코 카누(34·포츠머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등장에 경기장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신체조건 완벽한 베스트 11
경기 풀어가는 능력 수준급

수비진 순발력-조직력 미흡
침투패스에 뒷공간 자주 뚫려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가 드디어 발톱을 드러냈다.

한국과 6월 23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펼칠 나이지리아가 이날 잠비아와 연습경기를 가졌다. 더반은 몇 달 뒤 한국과 나이지리아가 대결을 펼칠 결전의 도시. 동아일보는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본선 조 추첨 발표 이후 우리가 상대할 국가의 대표팀 경기를 직접 확인했다.

○ 베스트11 절반 이상 유럽파

나이지리아는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이후 처음으로 이날 베스트 멤버를 꾸려 경기에 나섰다.

월드컵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온 데다 10일 앙골라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베스트 11 가운데 절반 이상은 유럽파로 채워졌다. 공격 최전방엔 아이예그베니, 오바페미 마틴스(26·볼프스부르크)가 투 톱을 이뤘고 미드필드 라인엔 미켈, 딕슨 에투후(28·풀럼), 칼루 우체(28·알메리아) 등이 자리 잡았다. 수비는 타예 타이우(25·마르세유), 오비나 은와네리(28·시온), 조지프 요보(30·에버턴) 등이 맡았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살아있는 전설’ 카누도 후반 10분경 교체 출전해 경기 감각을 조율했다.

함께 경기를 지켜본 대표팀 박태하 코치가 처음 내뱉은 말은 이렇다. “피지컬(신체조건)이 장난 아니네요.” 경기에 나선 나이지리아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85cm가 넘었다. 균형 잡힌 몸매에 탄력 넘치는 근육은 축구에 최적화된 신체조건처럼 보였다. 유연성도 뛰어났다. 역시 함께 경기를 관전한 대표팀 김세윤 기술분석관은 “나이지리아 선수들의 볼 터치는 소리부터 다르다”며 “워낙 몸이 유연해 볼 컨트롤하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주요 포지션마다 포진한 경험 많은 선수들의 경기 조율 능력이 돋보였다.

○ 아직 해결사는 눈에 안 띄어

하지만 약점도 파악됐다. 0-0이란 결과가 말해 주듯 나이지리아는 9일 한국과 평가전을 치르는 잠비아에 경기 내내 고전했다. 선수들의 이름값과 신체조건은 월등했지만 볼 점유율 등 경기 내용에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먼저 해결사 부재가 문제로 지적됐다. 아이예그베니는 공격이 안 풀리자 2선에 내려와 공을 잡는 등 전성기의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빠른 스피드가 주무기인 마틴스는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볼을 쫓아가는 데도 애를 먹었다. 박 코치는 “카누 등 대표 스트라이커들은 전성기가 지났고 신예 공격수 가운데는 눈에 띄는 선수가 없다는 게 나이지리아 샤이부 아모두 감독의 딜레마”라고 전했다.

중앙 수비수들도 허점을 보였다. 몸싸움은 뛰어났지만 순발력이 떨어졌다. 잠비아 공격수들의 침투 패스에 번번이 뒤쪽 공간을 허용했다. 볼 컨트롤도 거칠어 경기 중에 서너 차례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측면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 능력도 떨어졌다. 공격수들이 적극적으로 도움 수비를 해주지 못하자 수비수들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김 분석관은 “박주영 이근호 등 공간 침투 능력이 좋은 공격수들과 스피드가 뛰어난 우리 측면수비수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술 부재도 약점으로 꼽혔다. 끊임없이 경질설이 흘러나오는 아모두 감독은 생각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자 경기 내내 모자를 썼다 벗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전술이 없다 보니 상대의 거친 압박과 협력 수비의 대응책도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박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개인 능력이 출중한 선수들입니다. 체력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테고 조직력을 어떻게 가다듬느냐에 따라 우리와 명암이 갈리겠죠.”

더반=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나이지리아팀 심장’ 미켈
뛰어난 패싱력… “모든 공격 그의 발끝서 시작”

“지∼성∼박? 물론 잘 알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활약 중인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심장’ 존 오비 미켈(사진)은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얘기를 꺼내자 활짝 웃으며 반겼다.

잠비아와의 연습경기 후 만난 그는 “리그에서도 라이벌인데 월드컵에서도 적으로 만나게 돼 안타깝다”며 “둘 다 좋은 활약을 펼쳐 팀을 16강으로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현재이자 미래로 손꼽히는 미켈은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5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그해 아프리카축구연맹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됐다. 2006년에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최우수신인상을 차지했다. 그의 잠재성을 알아 본 첼시와 맨유는 2005년부터 1년 넘게 그를 잡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이날 연습경기에서도 미켈은 자신의 가치를 여실히 입증했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플레이메이커로 나선 그는 잠비아 수비수들의 거친 압박에도 여유가 넘쳤다. 그가 공을 잡으면 동료들은 여기저기서 ‘오비’를 외쳤다. 그는 여지없이 가장 적절한 공간으로 패스를 뿌렸다. 경기를 지켜본 대표팀 김세윤 기술분석관은 “미켈은 자신에게 연결되는 볼을 받으면서 뒤를 3차례나 쳐다봤다”면서 “눈이 좋다 보니 판단력도 뛰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켈은 큰 체격(186cm, 87kg)에도 볼 컨트롤이 뛰어났다. 볼 터치가 좋아 공을 안정적으로 잡았다. 발의 모든 부분을 고루 사용하다 보니 수비수가 여러 명 붙은 상황에서도 공간을 만들어냈다.

미켈은 “어릴 적부터 밥을 먹을 때도 항상 축구공을 곁에 뒀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기에 공이 발에 붙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비결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미켈은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 없었고 후반 10분이 되자 지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최근까지 리그에서 뛰어 아직 체력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큰 경기에서 체력이 문제로 지적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네이션스컵과 월드컵에선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첩보영화 뺨친 경기장 진입-취재▼

보안원, 경기장 접근도 불허
읍소…애교… 2시간 설득작전

촬영 안하는 조건 겨우 통과
감시눈 피해 휴대전화 ‘찰칵’

007 작전이 따로 없었다.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마침내 ‘잠입’에 성공한 순간 우리는 마치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이지리아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잠비아와 연습경기를 치른다는 첩보가 처음 들어온 것은 5일 오후(현지 시간). 잠비아와 9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평가전을 치르는 한국이 잠비아의 일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보고를 받은 허정무 감독은 지체 없이 박태하 코치와 김세윤 기술분석관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나이지리아가 전력 노출을 꺼려 훈련장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보내는 게 낫다”는 게 허 감독의 판단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는 나이지리아에 대한 정보는 중요했다. 잠비아와 경기를 치르는 한국으로선 이 경기가 요긴한 자료로 쓰일 수도 있었다.

기자는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이들과 동행해 6일 오전 9시 러스텐버그를 출발해 2시간 만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이어 항공편으로 더반에 가 오후 2시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장 주변 경계는 예상보다 더 삼엄했다. 경기장에서 반경 100m가량 떨어진 곳에 담장이 쭉 둘러져 있었다.

출입구는 오직 한 곳밖에 없었다. 보안 담당자는 앵무새처럼 “No(노)!”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는 게 그가 한 말의 전부였다. 2시간 동안 경기장 주변을 다섯 바퀴나 돌면서 방법을 찾았지만 수가 없어 보였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가려는 순간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보안 담당자가 카메라 등 촬영 장비를 반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 것. “한국에서 비싼 돈을 주고 경기를 보러 왔다”는 읍소와 축구 얘기를 끊임없이 하며 친근함을 보인 덕분인지 얼음 같던 보안 책임자의 마음이 녹은 듯했다.

경기장에 들어와서도 감시의 눈초리는 계속됐다. 수첩에 메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관계자가 수시로 다가와 “뭘 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때마다 “팬인데 사인을 받기 위해 수첩을 가지고 왔다”고 둘러댔다. 사진은 김 분석관이 가져온 휴대전화 카메라로 해결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 코치는 “이제 감독님을 뵐 낯이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김 분석관도 “태극전사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청신호가 될 것 같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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