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에베레스트 원정대 남서벽 ‘코리안 루트’ 뚫어

  • 입력 2009년 4월 30일 20시 45분


세계 3번째… 8일 정상 도전

새벽 5시에 캠프4(8000m)를 출발한 신동민 대원(35)은 정오가 넘도록 수직 암벽과 사투를 벌였다. 높이 2500m가 넘는 마의 암벽인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내기 위한 마지막 고비. '해가 지기 전에 정상 공격을 위한 캠프5를 구축하고 내려와야 한다.' 신 대원의 입술은 타들어갔다.

얼마나 올랐을까.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고산 풍경. 운무마저 잔뜩 껴 방향 감각이 무뎌졌다. 흐려진 시야 사이로 낯선 로프와 산소통이 보였다. 1982년 남서벽을 넘어 서릉을 통해 정상 공격에 성공했던 러시아 원정대가 남긴 것이었다. '아 남서벽을 올라온 것인가.' 신 대원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2009년 4월 29일 오후 3시(한국 시각은 29일 오후 6시 15분).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신 대원은 남서벽을 넘어 서릉에 서는 데 성공했다. 고도계는 8430m를 가리켰다. 수천미터의 남서벽을 넘어 서릉에 선 최초의 한국인이 된 것이다.

캠프1에서 망원경으로 신 대원의 코스를 잡아주던 박영석 대장(46·골드윈코리아 이사)의 두 눈도 감격으로 불거졌다. 박 대장은 4전5기 끝에 남서벽에 길을 내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잃은 후배 4명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 드디어 해냈다. 정말 꿈만 같다. 원을 이뤘다." 박 대장은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박영석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루트를 내면서 세계 등반사에 한 획을 그었다. 남서벽은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는 20개가 넘는 루트 가운데 가장 험한 길. 2500m가 넘는 수직 벽 때문에 한때는 불가능한 루트로 여겨졌다. 하지만 1975년 영국 팀이 이 지옥 길에 첫 길을 낸 뒤, 러시아 팀이 뒤이어 새 루트를 뚫었다. 그리고 이번에 박영석 원정대가 러시아 팀 이후 27년 만에 다시 남서벽에 새 길을 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원정대는 남서벽을 넘어선 서릉 초입에 마지막 기지인 캠프5를 설치했다.

원정대는 3일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새로 개척한 '남서벽 코리안 루트'를 통해 상위 캠프로 올라간다. 8일 새벽 8500m에 위치한 캠프5를 떠나 정상(8850m) 공격에 나설 예정이다.

남서벽을 거쳐 서릉을 통한 정상 도전은 러시아 팀에 이어 두 번째다. 서릉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어 원정대는 새로 길을 뚫으며 정상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면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최초로 한국인이 낸 길을 통해 정상에 서게 된다. 그것도 가장 높고, 험한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통해 쾌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박 대장은 "남서벽에 신 루트를 내는 감격도 맛봤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우리가 낸 새 길을 통해서 대원들과 함께 정상에 기필코 서겠다"고 다짐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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