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KISS] 도박적 분배구조가 약물 부른다

  • 입력 2009년 4월 27일 10시 42분


도핑(Doping)이라는 말은 네덜란드어인 ‘dop’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남아프리카의 줄루(Zulu)족 전사들이 전투 전에 용맹성을 높이기 위해 마셨던 알콜성 음료이다.

스포츠 도핑은 선수가 경기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금지된 약물 또는 금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도핑은 스포츠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혜택의 거의 모두를 파괴하는 폐해를 주기 때문에 반드시 추방되어야 할 대상이다. 국제 반도핑 활동을 목적으로 IOC가 주축이 돼 세계 각국 정부들과 함께 설립한 기구가 세계반도핑기구(WADA)이며, 본부는 몬트리올에 있다.

필자는 WADA의 윤리 교육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위원회에서 깊이 논의된 부문이 도핑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주로 선진국의 각 분야 전문 학자들인 위원들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 부분이 스포츠 자체가 안고 있는 불합리한 심층 구조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스포츠의 핵은 경쟁이다.

스포츠 경쟁에서 경기 후 보상은 참가자의 경기력에 합리적으로 비례해 분배되지 않는다. 즉, 이긴 측은 극히 과장된 크기의 좋은 보상을 독차지 하게 되고, 미세한 차이로 패배한 측은 보상은 커녕 비난 등 부정적인 내용까지 떠안게 된다. 보상 분배의 핵심에는 도박적인, 불합리한 내용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참가자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기 위해 불법적인 약물이라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스포츠에 관련된 ‘열정’의 큰 부분이 이렇게 도박적으로 몰려 있는 불합리한 보상 분배 구조와 관계되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에서 스포츠를 배척할 수 없다. 스포츠에는 우리 인류의 자발적 열정이 엄청난 크기로 존재하고 있다. 또 달리 생각하면, 치열한 경쟁들로 점철된 현실의 삶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스포츠 경쟁에 투영돼 나타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조금 긍정적,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스포츠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체력 강화까지 동반되는, 가장 적합한 경쟁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사전에 어른들의 합의가 이루어진 구체적인 경쟁교육 지침이 치밀하게 연구되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유사한 경쟁의 맥락에서 생각나는 것이 말썽 많은 대학 입시 경쟁이다.

여기서도 대입 문제 자체 만에 매달리지 말고 근본적인 원인으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 예를 들어, 한 번의 일류대학 합격이 ‘新 사주팔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뒤를 봐주는 우리 사회 구조, 여기에 분명히 잘못이 있다. 이렇게 몰아주는 도박적 보상 분배 구조의 폐해를 깊이 이해하고, 이의 불합리성에 분노하며, 그런 배경을 조금 더 가벼이 여기는 사회적 공감을 키워가는 구체적 움직임, 또 경쟁을 수용해야 한다면 그 사람의 현재 실력을 평가해 그 내용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공감을 키워가는 구체적인 움직임들은 어떨까.

김용승 KISS 책임연구원

UNESCO 및 WADA 한국대표, WADA 윤리 및 교육 상임위원. 불안, 동기, 경쟁 교육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스포츠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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