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WBC 스펙트럼] 오늘은 울어도 좋다

  • 입력 2009년 3월 19일 07시 51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2라운드 첫 경기 멕시코전을 하루 앞둔 15일(한국시간) 공식 기자회견에서 “3년 전에 이곳에서 영패를 당했습니다. 기억납니다”라며 이를 질끈 깨물었습니다.

‘대한국민’이라면 ‘염화미소’고사처럼 김 감독이 더 이상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 속뜻을 알아챌 수 있었겠지요.

펫코파크는 3년 전 WBC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곳이었습니다.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일본에 2차례나 이기며 6전승으로 4강에 진출했지만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일본에 발목을 잡혀 눈물을 흘린 장소.

우리는 억울해서, 그리고 너무 분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8일 통한의 그 장소에서 우리는 일본을 꺾었습니다. 펫코파크를 찾은 교민들은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고,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3년 전의 눈물을 가슴 속에 담은 채 그라운드를 질주했습니다.

칼끝 같은 승부에 선 김인식 감독은 덕아웃에서 차마 앉지 못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어서 있었습니다.

초조한 순간에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올랐고, 위기를 넘기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더군요.

이용규는 경기 후 오른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1회 도루를 성공할 때 오른쪽 4번째 손가락이 베이스에 걸리면서 부어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방망이를 붙잡고 타석에 서서 ‘사무라이’와 끝까지 대결을 펼쳤습니다.

4-1 승리를 확정하는 순간, 이진영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순간에 한국야구, 아니 대한민국의 저력에 온몸에 전율이 일지 않았습니까.

3년 전 1회 대회의 4강을 우연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다시 해냈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희생하고 뭉치는 대한민국의 힘. 야구는 어쩌면 힘겨운 우리사회에 희망을 전해주었는지 모릅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펫코파크에 남아 감격에 울고, 태극기를 흔들던 교민들의 모습.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오늘만큼은 충분히 울어도 좋은 날이었습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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