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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3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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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4-4 상황서 미끄러지며 골대 벗어나 ‘눈물’
흔히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신(神)이 있다고들 한다. 이 신은 매우 잔인한 신이다.
이 신은 이번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선수 중 가장 유명한 선수를 점찍어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했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승부차기. 전후반을 1-1로 마치고 연장전까지 치른 뒤였다.
승부차기 2-2 상황에서 맨체스터의 간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세 번째 키커로 나섰다. 올 시즌 31골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데다 전반 26분 선제골까지 넣었던 호날두의 실축을 예상하는 팬은 별로 없었다.
호날두는 킥을 하려다 잠시 멈칫했고 이 때문에 방향을 읽혀 왼쪽으로 날린 슛이 상대 골키퍼 페트르 체흐에게 막혔다.
5명의 선발 키커 중 맨체스터가 모두 킥을 한 뒤 상황은 4-4. 이제 남은 키커는 첼시의 존 테리.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첼시의 얼굴이다. 주장을 맡고 있는 테리는 천천히 공 앞으로 다가섰다. 그가 골을 넣으면 5-4로 승부가 끝나는 상황.
러시아 석유 재벌로 20조 원대의 재산을 가진 ‘조만장자’인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안절부절못하다 얼굴을 숙이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변수였다. 테리는 골키퍼를 완전히 속이며 오른쪽으로 공을 날렸으나 슈팅 직전 디딘 왼발이 미끄러지면서 공은 골대 밖으로 살짝 벗어났다.
기사회생한 맨체스터는 승부가 날 때까지 이어지는 남은 승부차기에서 자신감을 얻고 두 골을 연달아 넣은 반면 첼시는 일곱 번째 키커 아넬카가 실축해 결국 5-6으로 패했다.
호날두는 드러누워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고, 테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맨체스터는 사상 세 번째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이어 2관왕을 차지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