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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29일 1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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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앞둔 강릉고의 함학수 감독과 상원고의 오대석 감독이 야구장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둘은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간단히 악수를 나누곤 서로의 덕아웃으로 이내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한 함학수와 오대석은 나란히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로 초창기 한국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감독태가 물씬 나는 두 사람은 현역시절 삼성 라인업의 주축이었다. 프로야구가 처음 생긴 82년. 삼성은 예나 지금이나 초호화 군단이었다. 국가대표 출신들이 즐비했고 실제로 그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함학수와 오대석은 이만수(현 SK코치)와 더불어 공포의 클린업트리오로 기용되곤 했다.
1루수였던 함학수는 찬스에 매우 강한 타자였다. 특히 득점 기회에서 중장거리포를 자주 터뜨려 경기의 향방을 한순간에 뒤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한편 오대석은 공수를 두루 갖춘 당대 최고의 유격수였다. 한국프로야구 첫 사이클링 히트(한 경기에 1, 2, 3루타, 그리고 홈런을 모두 기록하는 것)의 주인공도 다름 아닌 그였다.
세월은 흘렀고 프로야구초창기, 같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두 사람은 이제 고교팀 감독으로 제 2의 야구인생을 살고 있다. 함학수 감독은 야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강원도의 강릉고를 이끌며 올해 청룡기 대회 준우승의 신화를 일구어 냈고 오대석 감독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상원고 감독으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함학수와 오대석은 얄궂게도 올해 황금사자기 대회 1라운드에서 적장으로 만났다. 경기를 앞두고 따로 간단한 인터뷰를 가진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높이 평가했다.
함학수 감독은 대구상고(현 상원고) 후배였던 오대석 감독의 현역 시절에 대해 “성실하고 자기 플레이를 잘 이해하는 선수였지.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존재였어.”라고 말했다.
오대석 감독 역시 “팀 배팅을 정말 잘하는 선배였어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승부욕이 강해 매 경기 정열적으로 임했습니다.”라며 함께 뛰었던 함학수 감독에 대해 회상했다.
그러나 이날만은 각자의 팀을 이끌고 서로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오랜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은 시합 전 경기 결과를 예상해 달라는 질문에 조심스럽기만 했다.
“우리가 전력이 달리지. 배운다는 자세로 싸우려고 해” (함학수 강릉고 감독)
“강릉고는 지난 청룡기에서 결승에 올라 상승세를 타고 있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대석 상원고 감독)
결국 경기는 11-10으로 상원고가 승리했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던 오대석 감독의 말대로 두 팀은 당일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다음 날 서스펜디드 경기를 통해 이틀에 걸쳐 혈전을 치러야 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선언되기까지 손에 땀을 죄는 이번 황금사자기대회 최고의 명승부였다.
결과적으로 오대석 감독은 승장, 함학수 감독은 패장이 됐다. 경기 후 출구에서 다시 만난 두 감독은 승패를 뒤로하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심어린 축하와 위로를 건넸다.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함학수와 오대석은 여전히 야구인으로 사는 절친한 선.후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대문야구장=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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