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야유로 점수 바뀌는 난장판 체조장

  • 입력 2004년 8월 24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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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아테네 올림픽 인도어홀에서 열린 체조 남자 종목별 결승 철봉. 판정에 분노한 팬들이 거센 야유를 보내자 곤혹스러워하며 점수 조정을 상의하고 있는 심판들.-아테네=연합 로이터 뉴시스
24일 아테네 올림픽 인도어홀에서 열린 체조 남자 종목별 결승 철봉. 판정에 분노한 팬들이 거센 야유를 보내자 곤혹스러워하며 점수 조정을 상의하고 있는 심판들.-아테네=연합 로이터 뉴시스
‘심판도 심판받아야 한다.’

오심으로 얼룩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관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24일 2004 아테네 올림픽 체조 남자 종목별 결승 철봉이 열린 올림픽인도어홀.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포함해 통산 12개의 메달을 딴 알렉세이 네모프(러시아)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이 종목은 그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전공 종목.

‘섹시 알렉세이’라는 별명처럼 인기가 많은 네모프가 6차례나 공중제비를 도는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는데도 전광판에는 9.725가 찍혔다. 예상보다 저조한 기록이 나오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5000여 관중은 일제히 일어나 야유를 시작했다. “우∼” 하는 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메아리쳤고 “네모프 네모프”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관중의 계속된 야유를 가라앉히기 위해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뼉을 치고 있는 러시아의 체조스타 알렉세이 네모프(왼쪽). 철봉 다음 출전자인 폴 햄(오른쪽)이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아테네=AP연합

그리스 관중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뜻의 “에스호스”를 외치며 심판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러시아 코치는 관중석을 향해 양팔을 들어올려 선동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네모프의 다음 순서는 공교롭게도 개인종합 경기에서 양태영(경북체육회)에 대한 결정적인 오심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딴 폴 햄(미국).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른 햄은 난장판 속에서도 경기할 준비를 하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대기장소로 내려갔다.

10분 가까이 계속된 관중의 집단야유에 심판진이 백기를 들었다. 네모프의 점수를 9.725에서 9.762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당초 9.65를 줬던 캐나다 심판의 점수를 9.75로, 9.60을 줬던 말레이시아 심판의 점수를 9.75로 높였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은 팬들의 분노는 잦아들 줄 몰랐고 결국 네모프가 햄의 요청으로 매트 위로 올라가 야유 중단을 정중하게 요청하면서 간신히 경기가 재개됐다.

우여곡절 끝에 철봉을 잡은 햄은 자신의 주종목답게 9.812를 기록해 이고르 카시나(이탈리아)와 동점을 이뤘지만 점수가 같을 때 감점이 많은 사람이 패한다는 동률 배제 원칙에 따라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에 그쳤다.

5위에 그친 네모프는 “모든 게 경기 전에 이미 결정됐다고 생각한다”며 “판정이 공정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적어도 동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오심을 주장했다.

오심 파문으로 얼룩진 올림픽 체조가 다시 한번 커다란 오점을 남긴 순간이었다.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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