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첫 체조대표된 소녀가장 배물음양과 가람군

  • 입력 2004년 1월 7일 18시 24분


코멘트
체조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돼 함께 태극마크를 단 배물음(왼쪽), 가람 남매. 소녀가장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체조 꿈나무로 성장한 남매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무안=정승호기자
체조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돼 함께 태극마크를 단 배물음(왼쪽), 가람 남매. 소녀가장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체조 꿈나무로 성장한 남매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무안=정승호기자
“아빠, 하늘나라에서라도 기뻐해주세요. 이젠 울지 않을게요.”

소녀가장인 광주 체육중 체조선수 배물음양(14·2년)과 동생 가람군(11·광주 서림초교 5년)이 나란히 체조 국가대표 상비군이 돼 새해 소망을 이뤘다. 지난해 물음양에 이어 올해 가람군이 태극마크를 단 것. 남매가 함께 태극마크를 단 것은 한국 체조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 남매는 8년 전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고 3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족이라곤 팔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뿐이다. 물음양은 요즘 동생과 함께 먹고 자며 훈련하는 게 꿈만 같다.

6일 오후 전남 무안군 일로읍 전남체육중 체육관. 이들 남매는 상비군으로 뽑힌 40여명의 체조 꿈나무들과 함께 연습에 푹 빠져 있었다. 하루 10시간의 고된 훈련이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물음양은 한국 체조계의 예약된 스타. 체조를 시작한 지 4년밖에 안됐지만 타고난 유연성과 뛰어난 표현력을 갖췄다. 지난해 전국종별체조선수권 종합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시즌 4관왕을 차지했다. 뜀틀 실력은 세계 수준이라는 것이 체조계의 평가다. 물음양은 지난해 2학년 전교생 80명 중 1등을 할 정도로 학업 성적도 뛰어나다.

가람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1년 서림초교 체조감독 나윤경 교사(30·여)의 손에 이끌려 체조를 시작했다. 가람군은 지난해 소년체전 단체전 동메달, 포스코배 전국체조대회 철봉 1위를 차지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들 남매가 체조 꿈나무로 클 수 있었던 것은 나 교사와 광주 체육중 체조감독 최규동 교사(46)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2001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숨지자 이들 남매는 돌볼 사람이 없어 운동을 그만둬야 할 처지였다. 당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나 교사는 남매를 집으로 데려와 1년여를 함께 지냈다. 나 교사가 이듬해 결혼하고 물음양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들을 떠맡은 사람은 최 교사. 최 교사는 물음양이 동생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하자 가람군을 광주 체육중 남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하도록 해줬다.

최 교사는 “남매가 집에 돌아오면 손을 꼭 잡고 잘 정도로 애틋하다”면서 “이들 남매가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돌봐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날 친구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갈 때면 동생과 함께 체육관을 찾았다는 물음양은 “동생이 생일날 케이크를 사달라고 조를 때면 껴안고 울기도 했지만 이젠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안=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