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승부사’박지은 4m 챔프퍼팅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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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졸였던 명승부였다.

5일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킹스밀GC(파71·6285야드)에서 벌어진 미국LPGA투어 올 창설대회인 미켈럽라이트오픈(총상금 160만달러) 최종 4라운드.

1타차의 단독선두로 출발한 박지은은 시즌 첫 우승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1번홀부터 티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범한 뒤 2번홀에서 보기, 4번홀에서 또 다시 보기를 범했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올 시즌 개막전 웰치스프라이스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를 연상케 한 분위기.

5번홀부터 파죽의 3연속 버디를 낚으며 페이스를 회복했지만 ‘챔피언조’로 맞대결을 벌인 크리스티 커(미국)는 7번홀(파5)에서 이글을 낚아 단숨에 2타차로 달아났다. 이후 13번홀까지는 두 선수가 각각 보기 1개씩을 기록하며 소강상태.

커가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3타차로 간격을 벌릴 때만 해도 박지은의 시즌 첫 우승은 사실상 물 건너 간 듯해 보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명승부를 위한 전주곡이었을 뿐. 진짜 승부는 마지막 4개홀 집중력 싸움으로 판가름났다. 커가 두 번째 샷을 숲 속으로 날려 보기를 범한 15번홀(파5)에서 박지은은 버디를 낚아 1타차로 바짝 추격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16번홀(파4). 박지은은 티샷이 페어웨이 오른쪽 나무에 맞고 튀어 깊은 러프에 빠진 위기상황에서 7번 아이언으로 홀컵 5m 지점에 투온시킨 뒤 짜릿한 버디로 연결했다.

반면 이미 직전 홀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커의 두 번째 샷은 어이없이 그린 오른쪽을 벗어났고 3온2퍼팅으로 연속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1타차의 재역전에 성공한 박지은은 까다로운 마지막 파3홀인 17번홀을 무난히 파세이브했다.

마지막 고비는 최종 18번홀(파4). 박지은의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깊은 러프에 빠졌고 두 번째 샷마저 그린 왼쪽을 넘어 러프에 빠진 것. 캐리 웹(호주)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합계 8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마쳐 만약 보기를 범한다면 4명이 연장승부를 펼쳐야 하는 어려운 상황.

그러나 박지은이 누군가. 미국 주니어와 아마추어 무대에서 60승을 거두는 동안 최종 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한 대회에서 한 번도 역전패한 적이 없을 만큼 두둑한 배짱과 뒷심을 지닌 선수다. 결코 만만찮은 거리인 4m짜리 파퍼팅은 거침없이 그린을 타고 흘러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지난해 7월 맥 말론(캐나디안오픈) 이후 10개월 만에 미국 선수의 우승을 기원했던 많은 미국 골프팬,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18번홀 그린을 떠나지 못한 웹과 오초아의 한 가닥 희망까지 날려버린 파퍼팅이었다.

미켈럽라이트 오픈 최종 성적
순위선수 스코어
박지은-9275(67-68-69-71)
크리스티 커-8276(69-68-68-71)
캐리 웹-8276(70-71-68-67)
로레나 오초아-8276(66-69-72-69)
김미현-7277(69-69-71-68)
아니카 소렌스탐-6278(68-70-70-70)
제니퍼 로잘레스-5279(69-69-72-69)
박세리-4280(69-69-70-72)
한희원-4280(67-72-68-73)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롤러코스터 탄 것처럼 짜릿”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짜릿했다.”

박지은은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챔피언 퍼팅을 성공시킨 뒤 양팔을 번쩍 들며 캐디 데이브 브루크(영국)와 감격스러운 포옹을 나눴다. 장갑을 벗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기에 승리의 기쁨은 더욱 커보였다.

다음은 미국LPGA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된 박지은의 공식 우승 인터뷰.

―시즌 첫 승을 올린 소감은….

“힘든 하루였다.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며 실제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주니어 시절부터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한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창설 대회 초대 챔피언으로 내 이름을 새겨 더 영광스럽다.”

―초반 4개홀에서 4오버파로 부진했는데….

“셋업 자세가 흔들리면서 백스윙이 빨라져 샷이 흔들렸다.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수도 없이 내 자신을 믿는다고 되뇌었다. 그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캐디도 계속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며 힘을 실어줬다.” ―챔피언조에서 맞붙은 크리스티 커와는 절친한 사이라던데…. “내가 열세 살 때였던 10년 전쯤 추수감사절 파티에서 두 살 위인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입었던 옷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니어 시절 대회에서 자주 부딪치며 친해졌고 얼마 전에는 내게 결혼식 들러리를 서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의 강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주 잘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선수들은 훈련을 매우 열심히 한다. 연습장에 가장 먼저 나가 가장 늦게 돌아가는 게 한국 선수들이다. 무엇보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성실함이 성공의 비결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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