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화제]안현수 “오노는 통과관문 일뿐…”

  • 입력 2003년 1월 5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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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를 꺾은 것은 정상으로 가기 위한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에 불과하다'는 안현수. 다음달 열리는 동계아시아경기대회를 대비해 태릉에서 훈련중 승리의 V자를 펴 보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쇼트트랙월드컵시리즈 4차대회서 오노에 앞서 질주하고 있는 안현수.이훈구기자
'오노를 꺾은 것은 정상으로 가기 위한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에 불과하다'는 안현수. 다음달 열리는 동계아시아경기대회를 대비해 태릉에서 훈련중 승리의 V자를 펴 보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쇼트트랙월드컵시리즈 4차대회서 오노에 앞서 질주하고 있는 안현수.이훈구기자
“제가 안현숩니다.”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 안현수의 손을 덥석 잡은 것은 그만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일까.

새해 오후의 태릉선수촌. 훈련을 위해 빙상장에 들어서는 한국남자쇼트트랙의 기대주 안현수(18·신목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반가움이 앞섰다. 얄미운 오노를 꺾은 주인공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지난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할리웃 액션으로 김동성의 금메달을 가로챈 미국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 그 오노를 꺾은 선수가 바로 안현수다. 지난해 12월9일 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열린 2002∼2003시즌 쇼트트랙월드컵시리즈 4차 대회 3000m 슈퍼파이널이 바로 그 무대.



이 일 이후 안현수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받은 축하 메일만도 벌써 수백통이나 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낸 메일이지만 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오노를 꺾고 나니 갑자기 유명해진 것같습니다. 지금도 계속 메일이 와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오노를 의식하고 싶지 않습니다.”

‘애 늙은이’라는 별명 대로다. 분명히 고교생인데 말하는 것은 그렇게 침착하고 의젓할 수가 없다.

“오노가 잘하는 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는 아닙니다. 오노를 꺾은 것은 정상으로 가기 위한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에 불과합니다.”

안현수는 오노에게 일침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계올림픽에서 오노가 한 속임수 동작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동입니다. 오노가 무명선수였을 때는 한국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조금 유명해진 뒤에는 슬슬 피하더니 결국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선배들이 이야기하더군요.”

안현수는 다음달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획득을 목표로 태릉선수촌에서 매일 7시간씩 강훈련을 하고 있다.

“아직 스타트에 문제가 많아 단거리보다는 중장거리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1500m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리자준이 강력한 라이벌이고요.”

지난해 1월 춘천에서 열린 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한 뒤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안현수는 태극마크를 단 것은 자랑스럽지만 1년 내내 훈련에만 매달리다 보니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고 친구가 별로 없는 게 아쉽단다.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기간이 1년에 두세달 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도 빙상하는 선수들 뿐이라 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안현수는 피부가 하얗고 잘 생긴 얼굴에 키도 훤칠해 소녀팬들을 몰고 다닌다. 빙상선수 가운데 ‘오빠부대’의 우상이 바로 그다.

그가 경기하는 날엔 10대 팬들이 경기장으로 몰려와 플래카드를 흔들며 목청을 돋군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여자친구는 한 명도 사귀어보지 못했다. “훈련이 끝나면 녹초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있어도 걱정”이란다.

안현수는 지금 한국 쇼트트랙의 1세대 스타인 김기훈 코치의 지도 아래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늘고 있다.

“자세가 높은 것도 문제고 몸싸움도 약하고…. 코치님이 여러 가지 지시하지만 제가 잘 따라가지 못하는게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을 기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안현수와는 달리 김기훈 코치는 “고교생 답지 않게 침착한 현수는 정말 기대해도 좋은 유망주”라고 귀뜸한다.

안현수는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때 빙상교실에 들어갔다가 재능을 인정받아 명지중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스케이트 타는 일 외에 별다른 취미도 없고 나중에 쇼트트랙 지도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안현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볼수록 괜찮은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유명해졌다 싶으면 금세 거들먹거리는 선수들과는 달랐다. 생각이 깊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침착하다고 해야할까. 굳이 비교하자면 바둑계의 ‘돌부처’ 이창호와 닮았다는 느낌이다.

이제 안현수가 ‘빙판의 황제’로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자. 그리고 틈 나는 대로 격려의 메일도 보내주자. 그의 메일 주소는 diamodanddo@hanmail.net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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