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황선홍-홍명보 '굿바이! 월드컵'

  • 입력 2002년 6월 30일 01시 15분


히딩크 감독이 3,4위전이 끝난 뒤 황선홍의 손을 들어주며 그동안의 활약을 기리고 있다.연합
히딩크 감독이 3,4위전이 끝난 뒤 황선홍의 손을 들어주며 그동안의 활약을 기리고 있다.연합
지난 한 달을 뒤돌아보면 꿈만 같았다.

온통 붉게 물든 경기장에서 그들은 상쾌한 여름 밤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의 월드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다만 진한 아쉬움만이 가슴 한 구석에 남을 따름이었다.

‘황새’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과 ‘캡틴’ 홍명보(33·포항 스틸러스)에게 29일 대구에서 열린 터키와의 3, 4위전은 월드컵 고별무대였다. 둘 다 4회 연속 월드컵 출전의 대기록과 4강 신화를 뒤로 한 채 축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이날 황선홍은 날고 싶어도 날 수 없었다.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무리하게 출전하다보니 왼쪽 엉덩이 부상이 심해졌기 때문. 경기 전 몸을 풀 때도 홀로 벤치를 지킨 그는 90분 동안 안타깝게 게임을 지켜봐야 했다. 지난달 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그로서는 태극마크를 단 마지막 경기에서 단 1초도 나설 수 없었으니 속이 더욱 쓰리기만 했다. 13세나 아래인 이천수에게 직접 물병을 건네주며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한 그는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지 경기 내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마지막 투혼.“내 볼이야.” 한국의 홍명보(왼쪽)가 터키의 하칸 쉬퀴르와 몸싸움을 하며 볼을 따내려 하고 있다.대구연합
왼쪽 팔뚝에 자랑스러운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선 홍명보도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듯 무거워 보였다. 그동안 수비를 책임졌던 최진철 김남일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조직력이 크게 흔들렸던 탓에 홍명보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던 것이 사실. 전반에만 팀이 3골을 내준 뒤 후반에 김태영과 교체된 홍명보 역시 황선홍의 곁에서 팔짱을 낀 채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경기 전날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유상철과 함께 월드컵 올스타에 뽑혔던 기쁨도 유종의 미를 못 거뒀다는 자책감 속에 묻혀버리는 듯했다.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도 한동안 자리를 못 뜬 황선홍과 홍명보는 6만3000여 관중의 뜨거운 기립박수 속에서 경기장을 떠났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뒤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히…’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

대구〓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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