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차 방송국 뒤집어 엎어 …러시아 표정

  • 입력 2002년 6월 9일 23시 33분


○…“일본에 지다니….” 러시아가 한 수 아래로 평가되던 홈팀 일본에 패하자 러시아 축구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조 선두를 달리던 러시아가 일본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당초 목표이던 8강은커녕 자칫 16강 진출까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경기를 지켜본 시민들은 “축구 후진국 일본이 유럽의 강호 러시아에 이길 정도로 발전했다”고 놀라워했다.

○…실망감은 폭동으로 변했다.

모스크바 중심가 크렘린궁 인근 마네즈 광장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시청하던 수천명의 축구팬들은 후반전 일본의 첫 골이 터지자 방송국 차량을 뒤집어엎고 주변에 서있던 차의 창을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목격자들은 난동 참가자들의 상당수가 경기 전부터 마신 맥주 때문에 취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마네즈 광장 일대를 봉쇄하고 간신히 팬들을 해산시켰으나 시내 곳곳에서 훌리건들이 20∼30명씩 몰려다니며 건물에 돌과 병을 던지는 등 소란을 계속했다. 이들은 크렘린궁 건너편 국가두마(하원) 건물에도 돌을 던져 경비 중이던 경찰관이 다치고 유리창이 깨졌다. 이들은 ‘브페료드 러시아(러시아 앞으로)’ 등 평소 축구경기에서 사용하는 응원구호를 외쳤다.

○…모스크바시 당국은 경기가 끝난 후 러시아팀의 패배에 흥분한 축구팬들의 과격행동이 있을 것에 대비해 시내 곳곳에 경찰을 집중 배치하는 등 대비했으나 난동을 막지는 못했다.

모스크바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와 마네즈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천명의 축구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으며 일부는 맥주병을 던지며 올레그 로만체프 러시아팀 감독을 성토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관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야간 외출을 삼가라”고 권고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 러시아팀의 패배에 흥분한 훌리건들의 습격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나 열성 축구팬이라고 밝힌 드미트리 벨랴코프(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는 “러시아팀의 패배가 아쉽기는 하지만 반일 감정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