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역대 외국인 사령탑 선진기술 전수 한몫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8시 36분


18일 거스 히딩크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계약을 하게되면 그는 한국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맡은 세 번째 외국인 감독이 된다.

90년 12월 독일의 세계적인 지도자 데트마르 크라머감독이 올림픽축구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해 작전권을 맡은 게 첫번째.

크라머감독은 92년 1월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본선 진출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92바르셀로나올림픽본선을 앞두고 그만의 독특한 자율훈련을 실시하다 선수들의 체력관리에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지휘봉을 놓아야 했다. 크라머감독은 훈련 시간 외에는 최대한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는 편이었지만 몇몇 선수의 체중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뛰어난 축구 심리전문가로서 크라머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선진축구 전술을 불어넣는 데 일조를 했다.

당시 크라머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국가대표팀의 서정원(안양)은 “크라머감독은 친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성격에 ‘너 정도의 스피드와 개인기면 유럽에서도 상위 수준’이라며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생각하는 축구를 머릿속에 심어주었다”고 말했다.

두번째 외국인 사령탑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팀 감독으로 호마리우가 이끄는 브라질을 꺾고 우승을 일궈냈던 그는 93년 10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에 패해 흔들리던 한국축구가 구조신호를 보냈고 처음에는 기술고문으로 한국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 김호감독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던 비쇼베츠감독은 월드컵 직후 김호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94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했으나 4위에 그쳤다.

95년 1월부터 올림픽대표팀을 맡은 비쇼베츠감독은 96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예선탈락하고 말았다.

이전에 한국축구는 68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공동 3위에 그치자 처음으로 독일의 크라우천코치를 영입해 기술자문을 하는 코치로 활용했고 70년대 초 잉글랜드 애덤스 코치가 역시 작전권이 있는 감독이 아닌 기술코치로 일했던 적이 있다.

<권순일기자>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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