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남북선수들 훈련장서 잘 어울려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27분


12일 시드니 올림픽파크 양궁경기장.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짙은 감색훈련복을 입은 한 여자선수의 가슴엔 북한의 인공기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자양궁 북한대표 최옥실(26). 그는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2위로 티켓을 따내 북한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번 올림픽 양궁에 출전하게 됐다.

최옥실은 백두산상체육경기대회와 공화국선수권대회, 만경대상체육경기대회 등 각종 체육대회를 휩쓴 북한 최고의 명궁. 컨디션이 좋을 땐 싱글라운드에서 1350점대를 쏠 정도다. 그의 훈련을 지켜본 한국팀의 이왕우코치는 “개인전에서 8강도 노려볼 만한 실력”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5개 성인팀 가운데 압록강(경찰청)팀에 속해 있다.

‘조선 활쏘기 협회’ 산하에 총 150여명의 선수가 활동중인 북한의 양궁수준은 아시아에서 중상위권 정도. 80년대 초반엔 오광순이 세계 2위까지 올랐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은 없다.

이번 대회 예상성적을 묻자 북한 김종남코치(35)는 “최옥실이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국제대회 참가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며 겸손해 했다.

최옥실은 11일부터 양궁장에서 남북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각국 선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훈련하고 있는 양궁장에서 늘 나란히 사선에 붙어 서 있는 남북 선수들은 쉽게 눈에 띈다.

최옥실이 워낙 수줍어하는 성격이라 훈련장에선 서로 가벼운 인사 정도가 오가는 게 보통. 하지만 한국선수들은 틈나는 대로 조언을 해 주며 동포애를 발휘하고 있다.

김종남코치는 수더분한 성격 탓인지 한국코치들과 잘 어울린다. “정치적인 대립을 떠나 우리들은 한 핏줄인데 서로 피할 이유가 없지 않갔시오?” 시골농부 처럼 인심 좋게 생긴 김코치의 말투에선 인정이 철철 묻어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가깝더라도 넘지 못할 벽은 있다. 휴식때 담배를 나란히 피우던 이왕우코치가 “저녁 먹고 우리 방으로 한번 찾아오라”고 제안하자 김코치는 “우린 솔직하니까 얘기하는 건데…. 방까지는 못 갈 것 같다”며 멋쩍은 표정.

대신 김코치는 “한국코치가 4명이니까 개성술 한 병씩 선물하겠다”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시드니〓올림픽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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