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월드컵축구대회 개최국 결정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래터 회장은 공공연히 “아프리카 대륙에서 2006년 월드컵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FIFA를 통괄하는 회장의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2006년 월드컵 개최권은 결국 ‘유럽의 맹주’ 독일에 돌아갔다.
당초 2006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는 독일 남아공을 비롯해 잉글랜드 브라질 모로코 등 5개국이 신청을 냈다.
브라질은 집행위원회 투표에 앞서 기권을 했고 모로코는 남아공과 함께 아프리카 국가였으나 시설 면에서 FIFA의 요건에 맞지 않았다. 축구장이 3개밖에 되지 않는 등 9개의 기준 요건에 맞는 축구경기장을 가진 남아공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또 잉글랜드는 악명 높은 ‘축구장 난동꾼(훌리건)’이 문제가 됐다.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3일 끝난 2000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난동을 일으킴으로써 잉글랜드가 유치 경쟁에서 뒤지는 데 결정타가 됐다.
독일과 남아공으로 좁혀진 유치 경쟁에서 독일은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는 모토 하에 “분단국이던 서독 시절 개최한 월드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월드컵대회를 통일국가로서 개최하고 싶다”며 한 표를 호소했다.
이에 반해 ‘아프리카대륙 첫 개최’를 모토로 블래터회장의 지원을 등에 업은 남아공은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개최권 획득이 유력해 보였으나 아직까지 정치 사회 불안이 상존해 있어 치안이 염려된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해 아깝게 유치에 실패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독일은 ‘축구황제’ 베켄바워를 축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세계적인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그리고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 등이 총출동해 유치 경쟁에 나섬으로써 유럽 지역 집행위원들과 북중미 집행위원들의 표를 확실하게 따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권순일기자>stt77@donga.com
▼남아공 대통령 "결과 승복"▼
남아공 국민은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의 광장에 모여 TV로 위성 생중계된 월드컵 개최지 결정 상황을 지켜보았으나 막판 탈락하자 크게 실망하며 한동안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남아공 국민도 월드컵 개최가 불황에 빠진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국내 일정 때문에 취리히에 가지 못했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결과에 승복하며 독일에 축하를 보낸다”면서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취리히DPA AFP 연합뉴스>
▼역대 월드컵 개최국▼
대회
연도
개최국
1회
1930
우루과이
2회
1934
이탈리아
3회
1938
프랑스
4회
1950
브라질
5회
1954
스위스
6회
1958
스웨덴
7회
1962
칠레
8회
1966
잉글랜드
9회
1970
멕시코
10회
1974
서독
11회
1978
아르헨티나
12회
1982
스페인
13회
1986
멕시코
14회
1990
이탈리아
15회
1994
미국
16회
1998
프랑스
17회
2002
한국-일본
18회
2006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