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아끼려 ‘당근 환전’했다 계좌 정지… 범죄에 악용 주의보

  • 동아일보

중고거래 플랫폼에 “외화 싸게 판매”
5000달러 이상 매매 신고 의무지만
“10만달러까지 거래 가능” 게시글도
‘법 사각지대’ 개인 환거래 노려 범죄
金 매매도 타깃… “고액거래 유의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달러 구매 희망 게시물. 구매 희망자는 “1회 거래마다 10만 불까지 한번에 구입 거래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 같은 거래가 이뤄질 경우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당근마켓 화면 캡처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달러 구매 희망 게시물. 구매 희망자는 “1회 거래마다 10만 불까지 한번에 구입 거래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 같은 거래가 이뤄질 경우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당근마켓 화면 캡처
세종시에 거주하는 이모 씨(54)는 4월 엔화 43만 엔을 402만 원에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을 통해 판매했다. 은행에서 환전하면 약 1.7%의 수수료를 내야 해 6만∼7만 원이라도 아껴볼 생각이었다. 이 씨와 만나기로 한 구매자는 이 씨가 엔화를 건네기도 전에 계좌에 300만 원, 102만 원으로 나눠서 두 차례에 걸쳐 먼저 입금부터 했다. 각각 계좌 명의가 다른 사람이긴 했지만 사기나 범죄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런데 구매자와 만나 거래한 지 5일 뒤 이 씨의 계좌는 전기통신금융사기 이용 계좌라는 이유로 지급 정지됐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자금세탁을 하기 위해 엔화를 받아가고 범죄에 사용된 돈을 이 씨 계좌로 보낸 것.

이처럼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되자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개인 간 외환 거래가 늘고 있다. 보유하고 있던 외화를 높은 환율에 파는 과정에서 교환 수수료를 아끼려고 직접 일대일 거래에 나서는 것인데, 이 씨처럼 피해를 입는 사례도 늘고 있어 당국이 주의 경보를 발령했다.

● ‘법적 사각지대’ 개인 환 거래 노린 범죄조직

23일 당근마켓에는 “만나는 시점에 네이버 환율로 달러를 판매하겠다” “처분 목적으로 시세보다 저렴히 내놓는다. 환율 급등으로 달러 수요도 많아지는데 좋은 가격에 가져가라” 등 외환 거래 글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전날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 1537원보다 낮은 1500원에 미국 달러를 2000∼3000달러가량 사겠다는 구매 희망자도 있었다. 대부분 환 차익을 얻거나, 은행 환전 시 내야 하는 수수료를 절약하려는 이들이었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외화 환전’ 키워드로 작성된 글은 최근 한 달 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서만 30여 건이 올라왔다.

문제는 이 같은 개인 간 환 거래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외국환 거래 규정 등에 따르면 국내 거주자가 매매 차익 목적 없이 5000달러 이내를 매매할 때는 별도로 한국은행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 다만 기준 이하 금액이라도 상습적으로 매매하면 처벌받을 수 있고, 5000달러 이상 매매는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 및 형사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1회 거래마다 10만 불까지 한번에 구입 거래 가능하다”는 게시글도 올라와 있었다.

이런 흐름을 틈타 법적 사각지대를 노린 보이스피싱 범죄조직도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으로 갈취한 돈을 개인 환 거래를 희망하는 이들의 계좌로 보낸 뒤 달러나 엔화 실물을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버젓이 범죄자금 세탁을 하는 것.

● 금 직거래도 타깃… 플랫폼 “범죄 악용 주의”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직거래되는 금 역시 자금세탁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다. 4월 세종시 조치원읍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현국 씨(45)는 자신의 식당 종업원이 당근마켓에서 금 10돈을 팔려고 직거래를 하던 중 돈을 받은 통장이 지급 정지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금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시세차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직거래를 시도했다가 사기를 당한 것. 종업원이 50대 여성 구매자를 만나 금 실물을 건네주기도 전에 매매 대금 870만 원이 먼저 계좌로 입금됐는데, 알고 보니 이 돈을 이체한 건 보이스피싱 피해자였다. 결국 이 종업원의 계좌도 정지됐다.

정 씨는 온라인에서 접근한 구매자와 동일한 아이디를 사용하는 인물을 추적한 끝에 직접 거래를 가장해 구매자를 유인한 뒤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세종 북부경찰서 조사 결과 정 씨가 붙잡아 넘긴 30대 남성은 금 수거를 위해 섭외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경찰은 추가 조사를 통해 정 씨의 식당 종업원으로부터 금을 가로채 간 50대 여성도 붙잡았는데, 역시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경찰은 이들의 윗선을 추적하고 있다.

외화와 금 직거래로 촉발된 피해가 늘어나자 최근 금융감독원은 외화를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할 때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자금 세탁 사례가 늘고 있다며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당근마켓은 “안전한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해 1000달러 이상의 외화 거래와 100만 원 이상의 금 제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며 “범죄 의심 정황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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