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약점?…내 특수성 밀고 나가면 오히려 강점 돼요”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6일 14시 36분


7살에 베트남서 한국에 온 김혜영씨
LG 다문화학교 도움으로 어학 매진
외대 진학해 이젠 자신이 멘토 맡아

1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영(23) 씨가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LG 제공
1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영(23) 씨가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LG 제공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었어요. 한국 땅에 갑자기 떨어진 이후로 초등학교 입학, 외고 진학, 현재 취업전선까지. 한 번 뛰어들면 죽기살기로 덤볐고 새로운 도전이 좋았습니다.”

1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영(23) 씨는 지난 17년 간의 한국생활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태어나 2009년 7살 나이에 한국에 중도 입국한 김 씨는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매일같은 막막함의 연속”
김 씨는 급작스럽게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 치료를 위해 한국에 오게 됐다. 한글 ㄱ, ㄴ, ㄷ도 모르는, 아무런 준비도 없던 상황이었다. 집안 사정상 국제학교에 갈 상황이 안 돼 일반 학교에 입학했고, 오로지 한국어만 써야 하는 환경에 처했다. 김 씨는 “말이 안 통하니 수업을 따라가기도,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다“며 “매일같이 막막함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사교육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학교 외 과정으로 지역구 다문화센터에서 받는 방과후 한국어 수업이 전부였다. 그렇게 3학년, 4학년으로 올라가며 한국인 또래 친구들 만큼 한국어를 구사하게 됐고, 5학년이 됐을 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모국어인 베트남어 공부에 나선 것.

“막상 한국어에 적응하고 나니 원래 알던 베트남어가 잊혀져 가더라고요. 명절에 고향을 찾으면 친척들과도 말이 잘 안 통했습니다. 특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서운해 하셨어요.” 김 씨가 베트남어 공부를 하게 된 배경이다. 당시 김 씨 어머니가 ‘LG와 함께 하는 사랑의 다문화 학교(LG 다문화학교)’ 프로그램을 주변에서 소개받아 딸에게 지원해볼 것을 권유했다. 베트남인이었던 어머니도 한국어 실력이 올라 지역구 다문화센터에서 통역사로 근무하던 차였다. 업무를 통해 LG 다문화학교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씨는 LG 다문화학교 3기로 입학해 주 2회 멘토로부터 베트남어 수업을 받았다. 멘토는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 전공생으로 문법, 어휘, 작문, 말하기 등 기초부터 고급 수준까지 실력을 탄탄하게 쌓도록 도움을 줬다. 김 씨는 여기에 매달 LG 다문화학교 소속의 다양한 언어권 학생들과 교류하는 자리를 가지며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연대감을 쌓는 기회를 가졌다.

●베트남어 ‘무기’로 외고 진학
김 씨가 베트남어 공부에 나선 것은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일반고가 아닌 외고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김 씨는 “사실 중학교 내신 성적이 특별히 우수하지 않았고 영어를 월등히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며 “하지만 베트남어에 강점이 있는 만큼 차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준비를 시작한 터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이때 LG 다문화학교에서 외고 진학 경험이 있는 멘토를 김 씨와 연결해줬다.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면접, 서류 접수까지 멘토의 도움으로 무사히 해결했고 2019년 베트남어 특기생으로 입학에 성공했다.

외고 진학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김 씨는 또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특목고에 진학한 우수 학생들과 치열한 학업 경쟁을 벌여야 했던 것. 김 씨는 여기서도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 차별화에 나섰다. 그는 “국어는 물론이고 영미권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많아 영어도 우위를 갖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수학만큼은 적성에 맞아 여기서 승부를 봐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김 씨는 선택과목으로 ‘경제수학’을 수강했고 수업 중 진행하는 모의주식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하는 등 수학에서 강점을 나타냈다. 특히 이때 경험이 계기가 돼 금융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김 씨는 2019년 전국이중언어말하기대회에도 출전해 대상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각자 준비한 주제로 한국어와 외국어 버전을 각각 발표하는 대회다. 전국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언어 구사 역량과 스토리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 약점을 강점으로”
김 씨는 2022년 외대 베트남어학과에 진학해 LG 다문화학교 멘토로 참여했다. 이제 도움을 받는 게 아닌 주는 자리에 선 것이다. 2년 가량 LG 다문화학교 7, 8기에 참여해 학생들에게 베트남어 수업을 진행했다. 김 씨는 “제가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만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여를 하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10여년 간의 한국 적응기와 유망한 장래를 인정받아 2021년 ‘제1회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청소년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학년인 현재는 제2의 도전을 꿈꾸고 있다. 고등학교 때 찾은 적성으로 금융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경영학을 함께 전공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증권사에서 인턴 활동을 한 데 이어 최근에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LG 계열사 채용연계형 인턴을 준비 중에 있다.

김 씨는 자신처럼 한국에 터를 잡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도움이 필요다고 말하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도움을 줄 사람을 기다리기 보다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며 “한국에 막 오고 나서부터 외고 입시, 대학 진학, 지금까지 저를 찾아오는 사람보다 제가 찾아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또 “다문화가정이라는 정체성이 약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다양한 언어, 문화를 갖는 다는 게 강점이 될 수 있다”며 내가 가진 특성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밀고 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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