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선 떠오르다]美 거주 곤론마루 희생자 아들, 10월 부산 추모제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2일 04시 30분


〈4〉 故 김주경 씨 유족 3대 한국행
졸업장 받으려다 희생된 선친
매 기일 생전 사진 놓고 기려
기사로 추모제 접해 참석 결심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연락선 ‘곤론마루(崑崙丸)’에 탑승했다가 1943년 10월 침몰 사고로 숨진 김주경 씨의 생전 모습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연락선 ‘곤론마루(崑崙丸)’에 탑승했다가 1943년 10월 침몰 사고로 숨진 김주경 씨의 생전 모습
“한국에서 많은 분들과 아버지의 영령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곤론마루(崑崙丸)’ 격침 사건의 추가 희생자 유족인 김세량 씨(82)가 올해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할 뜻을 밝혔다. 10여 년 전부터 생존 국내 유족인 김영자 씨(86)와 한일 역사학자 등 10여 명만 참석한 채 쓸쓸한 분위기 속에 이어져 온 추모제가 올해는 더욱 의미 있는 행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에 거주하는 곤론마루 침몰 사건의 유족 김세량 씨(맨 왼쪽)가 아들, 손자와 함께 서 있다. 김세량 씨 제공
미국에 거주하는 곤론마루 침몰 사건의 유족 김세량 씨(맨 왼쪽)가 아들, 손자와 함께 서 있다. 김세량 씨 제공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김 씨는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추모제 참석을 위해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 등 온 가족이 올 10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최근 항공편 예매도 마쳤다”고 밝혔다. 김 씨 가족은 추모제 참석 이후 일본 시모노세키를 찾아 곤론마루 격침 해역 인근에서 헌화하는 등 2, 3주간의 한일 방문 일정을 구체화하고 있다.

곤론마루는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던 연락선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0월 5일 새벽 후쿠오카 인근 해역에서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승선자 655명 가운데 72명만 살아남았고, 하부 승선실에 있던 조선인과 일본인이 대거 희생됐다. 김 씨의 선친인 김주경(金周京) 씨는 당시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승선자 명단에서도 비교적 쉽게 이름이 확인됐다.

곤론마루 승선자 명단에 적힌 김주경(金周京) 씨 이름.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제공
곤론마루 승선자 명단에 적힌 김주경(金周京) 씨 이름.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제공

김 씨는 침몰 전날인 10월 4일을 선친의 기일로 정해 매년 추모해 왔다고 전했다. 그는 “2024년 9월 별세한 모친은 기일이 되면 선친의 사진을 꺼내 놓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까지 확인된 생존 유족이 사실상 김영자 씨 한 명뿐이고, 10월마다 조촐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연을 기사로 접한 뒤 더 늦기 전에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민간이 주최하는 조촐한 추모제도 의미가 있지만,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해 함께 연다면 더욱 뜻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선친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없다고 했다. 그는 1944년 4월생으로, 곤론마루 침몰 당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생전 모친이 사진을 앞에 두고 자주 들려준 이야기 속 아버지의 모습은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선친에 대해 외모가 준수하고 문장력이 뛰어나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훌륭한 분이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며 “약혼 시절 장인이 될 외조부에게 보낸 문안 편지가 특히 칭찬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김 씨의 부모는 1942년 5월 혼인한 뒤 개성 본가와 일본 도쿄를 오가며 생활했다. 1943년 선친이 일본 메이지대 정경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개성에 자리를 잡았다.

김 씨는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도쿄 등지에 미군 공습이 심해져 개성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대한해협을 관부연락선으로 왕복한 것은 부주의한 처사였다고 모친이 선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에 참전시키기 위해 대학생을 조기 졸업하게 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청년은 징집을 면제했다. 김 씨의 선친은 졸업 당시 도쿄에서 치러진 공무원 임용고시에 합격해 조선철도국 근무가 예정돼 있었다. 김 씨는 선친이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을 다시 찾은 이유가 졸업장을 수령하기 위해서였다고 기억했다.

개성 지역사를 연구한 이철성 건양대 교수의 자료 등에 따르면 김 씨의 조부인 소계(小溪) 김정호 씨는 일제강점기 개성 재계의 핵심 인물이었다. 일본 메이지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해 1936년까지 개성전기주식회사를 이끌었고, 조선물산장려회 이사와 개성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맡았다.

다만 그는 당시 개성의 유력 인사였던 만큼 해방 이후 친일 인사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조부는 창씨개명을 하라는 요구에 ‘절대 이름을 바꿀 수 없다’며 거부했고 늘 조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고 설명했다. 부친 사망 후 혼자 남은 외아들이었던 김 씨는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으나 국가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해 군 복무를 했다. 김 씨와 모친은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곤론마루#추모제#김세량#태평양전쟁#한일 역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