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처럼 자궁내막증 치료센터 설립하고 전문의 육성 시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23일 11시 18분


김도균 동국대 경주병원 산부인과 교수 인터뷰

23일 동국대 경주병원 연구실에서 김도균 산부인과 교수가 자궁내막증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적인 통계로 볼 때 우리나라 환자는 8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며 “젊은 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여성 환자들이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주병원 제공
23일 동국대 경주병원 연구실에서 김도균 산부인과 교수가 자궁내막증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적인 통계로 볼 때 우리나라 환자는 8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며 “젊은 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여성 환자들이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주병원 제공
“서울 및 수도권보다 20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도균 동국대 경주병원 산부인과 교수(57)는 23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궁내막증’의 원인과 수술 방법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궁내막증은 자궁 안의 세포가 다른 부위에 증식하면서 여러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여성들이 생리할 때 증상이 특히 심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변(病變·병으로 변화한 조직)이 피멍처럼 쌓이고 자라 골반 주변 직장과 신장, 자율신경계를 파고들거나 횡격막을 지나 간과 폐까지 번지는 사례도 있다. 타는 듯한 고통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인 환자도 적지 않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요즘 하루 평균 150~18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경주 등 인근 지역 환자는 거의 없고 서울 등 다른 지역 환자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실제 온라인에는 그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환자들의 후기가 적지 않다. 그는 “오전 5시 반에 출근해 오후 9시까지 근무하면서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팀은 최근 국내 처음으로 횡격막과 방광, 자궁 인대, 난소 등에 동시 침윤(浸潤·염증 및 감염 세포가 정상 조직으로 퍼져 들어가는 상태)한 심부 자궁내막증 환자의 수술에 성공했다. 특히 복강경(환자 수술 부위에 구멍을 낸 뒤 특수 카메라를 이용하는 수술) 접근 방식으로 문제의 세포를 모두 제거했다.

이번 수술은 산부인과와 흉부외과 협진으로 진행됐으며, 오른쪽 횡격막과 심낭, 방광, 왼쪽 난소, 골반 순으로 병변을 완전히 제거했다. 횡격막 주변 수술은 복강과 흉강에 동시에 구멍을 내 시행했다. 이 병원은 필수 의료 기반인 최첨단 로봇 수술 시스템 ‘다빈치’도 2대 운영하고 있다.

32세 여성 환자는 수년간 극심한 생리통과 골반, 가슴과 어깨, 배뇨 통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김 교수를 찾았다. 이 환자는 8일 수술을 받고 18일 퇴원했으며, 현재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주요 장기 기능도 이상 없이 회복 중이다. 김 교수는 “조만간 일상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며 “향후 통증 조절과 임신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적 관찰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술은 자궁내막증과 기흉(氣胸)의 인과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치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 병원 측 설명이다. 김 교수는 “월경 주기에 반복되는 기흉과 흉통, 어깨 통증의 원인은 골반에서 시작된 침윤성 자궁내막증이 횡격막을 관통해 흉막과 폐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라며 “기존 흉부외과 중심 치료는 기흉 자체를 치료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병변의 기원인 골반 병소를 제거하지 못해 재발 위험을 낮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치료를 위해 심부 자궁내막증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브라질 벨루오리존치대 리차드 페레이라 교수를 직접 초청해 ‘지도 수술’ 형태로 수술을 진행했다. 페레이라 교수는 “골반 병변을 정확히 이해하고 여러 장기를 함께 절제할 수 있는 전문가가 치료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궁내막증 연구와 치료에 20여 년간 몰두해 왔다. 이 분야 선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라질과 스위스 등을 자비로 오가며 수년간 수련했고, 스승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금은 인도와 터키에서 제 수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고 했다.

김 교수는 최근 융합 의학 분야의 신기술도 익혔다.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환자를 수술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그는 “말초신경이 정상이라면 골반 내 하반신을 담당하는 운동신경을 찾아 전기선을 심는 수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자궁내막증 등 전문 연구를 위해 2021년 대한골반신경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술 영상도 공유하고 있다. 다음 달 1월에는 부산과 인천에서 강의도 할 예정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는 이미 자궁내막증 치료센터가 생기고 전문의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며 “여성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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