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빼” “난 합동 브리핑 합의 안 해”…‘의료계 창구 일원화’ 참 힘드네

  • 뉴스1
  • 입력 2024년 4월 9일 12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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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신임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이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제42대 의협 회장 당선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3.29/뉴스1 ⓒ News1
임현택 신임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이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제42대 의협 회장 당선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3.29/뉴스1 ⓒ News1
의대증원을 둘러싸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던 의료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하나 싶더니 하루도 안 돼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국의과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이 총선 직후 합동 기자회견을 한다고 예고했지만, 만 하루도 안돼 대전협이 “합의한 적 없다”고 선을 긋는가 하면 의협 회장 당선인과 비대위간에 힘겨루기까지 펼쳐지는 모양새다.

의료계는 지난 7일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포함된 의협 비대위는 3시간가량 회의를 열고 총선 이후 대전협, 전의교협, 의대협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의료계 소통 창구를 단일화해 달라는 정부의 계속된 주문에 따라 그에 화답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생각은 달랐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그다음 날인 8일 곧바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합동 브리핑 진행 합의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의협, 전의교협 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은 의대증원 국면 초기부터 감지됐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4년 전인 지난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의협이 정부와 졸속 합의를 하면서 전공의들이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의교협에 소속된 한 교수는 “전공의들은 2020년에 당한 게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의협에도, 교수에게도 선을 그어왔다”면서 “오로지 본인들이 행동을 해서 필수의료를 바꿀 생각을 한다. 우리와 소통은 하지만 우리가 얘기했다고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 또다른 악재가 불거졌다. 제42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의 충돌이 표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하고 온 박 위원장을 “내부의 적”이라고 저격하기도 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SNS에 임 당선인이 자신을 저격한 내용이 담긴 기사를 링크한 뒤 “해당 기사는 유감”이라면서 “언제든 대화 환영한다”는 글을 남기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전의교협 소속 교수는 박 위원장이 합동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전협 내부 논의도 필요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지금 의협 내부 문제도 있어 그런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의 불협화음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임 당선인이 차기 회장에 선출이 된 이후부터 갈등은 시작됐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임 당선인은 당선 직후 곧바로 의협 비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했지만 비대위는 기존의 김택우 비대위원장 체제를 유지했다. 여기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비대위 정책분과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이때부터 임 당선인 측은 “의협 비대위에 패싱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임 당선인과 현 의협 비대위의 갈등은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깜짝 회동을 한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주선하고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조율했다”고 한 반면, 임 당선인은 회담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그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교수들도 강경파 중 강경파인 임 당선인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양새다. 특히 정부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임 당선인의 스탠스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게 교수들의 중론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접촉을 해보면 현재 의협 비대위는 합리적인데 임 당선인은 의대 증원 1년 유예는 말도 안 되고 오히려 의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게 국민 눈높이에 맞는 발언인가”라며 “지금 전공의들도 교수들도 의협 비대위를 믿지 임 당선인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협 비대위가 중재안으로만 발표하면 충분히 타협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사실 걸림돌은 임 당선인”이라고 했다.

이같은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임 당선인은 8일 의협 대의원회 의장과 비대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을 내놓으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임 당선인은 공문을 통해 “원래 의도와는 달리 비대위 운영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한 극심한 내외의 혼선이 발생했다”며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원래의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결의대로 임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의 책임을 맡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의협 비대위는 임 당선인이 주장하는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결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성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공문을 보면 ‘회장이 당선이 되면 그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을 하기로 운영위원회에서 확정지었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기억이 없어 나름대로 회의록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또 비대위와 의견이 안 맞는 점이 많다고 이야기 한 부분도 의문점이 있어 이런 의문사항들에 대해 질의를 해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임 당선인이 비대위 해체를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도 “월권”이라며 “그건 당선인이 할 문제가 아니고 비대위 구성과 해체는 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할 사항”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생명을 두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사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노력보다 사분오열되는 모습까지 보이자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지금 시간이 없는 상황에 누가 잘났느니 왜 내 말을 안 따르느니 가족끼리 치고받는 걸 보면 한심하다”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내부 총질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협 비대위는 9일 오후 3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임 당선인과의 문제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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