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 든 손에 울컥” 외로운 노인 생일상 차려주는 막창집 사장님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11월 16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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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봉사활동 14년 정연달·박현숙 씨 부부



대구 중구 남산동의 한 골목에 있는 고깃집은 한 달에 한 번씩 어르신들로 가득 찬다. 식탁에는 이 식당의 주메뉴 말고도 미역국과 각종 나물, 잡채, 전, 케이크 등이 푸짐하게 올라간다.

막창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연달(64) 박현숙 씨(60) 부부가 독거 노인 등을 위해 십수년 째 차리고 있는 잔칫상이다. 대구 중구 전역에서 이 식당을 다녀간 어르신은 대략 3000명이 넘는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이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쭈뼛쭈뼛 쿠폰 내미는 어르신 마음에 걸려


정 씨 부부가 식당을 하며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일부 독거노인들이 홀로 찾아와 ‘식사 쿠폰’을 주저하며 내미는 모습이었다.

지자체 복지관에서 쿠폰을 나눠주고 그 쿠폰으로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안이지만, 쿠폰 내미는 것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정 씨는 이런 노인들이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날짜를 정해 한꺼번에 자신의 식당으로 초대하자고 마음먹었다.

그 후로 매월 한 동에 30~50명씩 중구의 12개 동을 돌아가면서 ‘일년 열두달’ 홀로 사는 노인들을 무료로 초대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3개월에 한 번 꼴로는 남산동 일대 어르신들을 30여 명씩 초대해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있다.

이렇게 한데 모인 어르신들은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마음 편히 식사를 즐긴다.

아들 며느리 손까지 동원해 생일상


잔칫날이 되면 정 씨의 아들과 며느리까지 모두 일손으로 동원된다. 주말 외에는 아르바이트가 없고 별도로 봉사원을 모집하는 것도 아니기에 30명이 넘는 인원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달려들어야 한다.

봉사 단체가 아닌 가족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대접 하다보니 어르신들은 더욱 ‘집밥’을 먹는 것 같은 편안함과 ‘정’을 느낀다.

특히 반찬은 부인 박현숙 씨가 직접 농사지어 만든 것들이 많다. 부부는 시골에 주택과 텃밭을 두고 있는데, 이곳에서 평소 직접 기른 작물을 잘 보관해 뒀다가 어르신들이 올 때 반찬 재료로 사용한다.

식사 봉사활동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별다른 후원이나 보수는 없으며 바라지도 않는다.

적자가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정 씨는 “지금 뭐 그런대로 장사는 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은 전혀 안한다. 돈이 아깝다든지 비용이 걱정된다든지 이런 생각이 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며 “사실 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이 큰 것이다. 내가 좋으니까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대구역 노숙자 급식 활동하다가 교통사고


정 씨의 음식 대접 봉사는 가게 운영 초기인 200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대구역 노숙자 무료 급식에 쌀을 기부해 달라는 한 사찰의 요청을 받았는데, 그때는 정 씨의 가게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정 씨는 “쌀은 반 가마니를 기부하고 내가 직접 몸으로 봉사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대구역 노숙자 배식 봉사는 매 주말마다 이어졌고 어느새 부부의 낙이 됐다.

정 씨 부부는 식당이 가장 바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대구역으로 향했다.

정 씨는 “그땐 알바생도 없고 둘이서 새벽 2시까지 손님 받고 치우다 보면 한 4시 이렇게 된다. 그러면 거의 안 자고 바로 배식할 밥을 하러 갔다”고 떠올렸다.

아침 6시까지 배식할 음식을 준비해 7시까지 대구역에 도착하면 일주일간 이날만 기다리는 이들이 줄을 섰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서서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나면 마음은 기뻤지만 몸은 기진맥진했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배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정 씨가 깜빡 졸아 주차된 차를 들이받았다. 정 씨는 “피곤한 상태로 집에 오다가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말았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해선 안되겠다고 생각한 정 씨는 건강도 지키며 봉사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남산종합사회복지관의 ‘해피런치타임’이라는 사업을 듣게 됐다.

정 씨는 복지관 측에 “해피런치타임을 내 가게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이 일을 도맡아 하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는 모이는 게 어려워 도시락으로 바꿨지만, 정 씨 가족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보내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기다리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엔 마음 아파


정 씨 부부의 음식 봉사활동은 올해로 약 14년됐다. 음식 봉사 외에도 사랑의 열매에 매월 25만원씩 기부하고, 매년 돌아오는 명절 때마다 사회복지관에 쌀 두 포대씩 제공하는 등 십 수년간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기부를 해왔다.

생면부지 노인들을 친 부모처럼 대접하는 이유에 대해 정 씨 부부는 “우리 자랄 때는 모두가 다 어려웠던 시절 아닌가. 돌아가신 양가 선친들 모두 살아 계실 때 이렇게 나누고 사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또 언제 불러주나 하고 이날만을 기다리고 계신 어르신들이 많다. 12개 동을 돌아가면서 하다 보니 순서를 기다리는 사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도 나이가 들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겠지만, 아이들이 옆에서 보고 도와 왔기에 뜻을 이어가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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