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 전체가 아닌 부실임도가 문제다[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1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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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호우 피해가 겨우 진정국면에 들어선 28일 남성현 산림청장은 “올 들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바쁘다”고 말했다. 올 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에 이어 이번에는 산사태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산림청 재난부서 직원들은 주말과 휴일도 반납한 채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산림청 직원들이 정신적으로 더 힘든 건 ‘이번 산사태의 원인이 바로 임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올 들어 발생한 산사태 900여 건이 임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어 임도가 산사태의 주 원인이란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물론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건 사실이다. 이달 26일까지 발생한 산사태 890건 중 임도에서 발생한 것은 316건으로 전체 산사태의 35.5%에 이른다.

하지만 임도 자체를 산사태의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산림청의 입장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일부 부실하게 조성됐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맞지만 모든 임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실제로 산사태가 일어난 구간은 전체 임도의 0.004%에 불과하다.

지난 6월 28일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서 발생한 산사태 현장. 동아일보 DB
지난 6월 28일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서 발생한 산사태 현장. 동아일보 DB

임도의 역할도 분명하다. 1968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임도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또 산림경영, 재배 임산물 운반, 늘어나는 숲길 트레킹 인구 증가 등으로 임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림(총 629만ha)에 설치된 임도는 산림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임도는 총연장 2만4929km로 ha당 3.97m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은 ha당 54m, 일본은 ha당 23.5m로 우리나라보다 각각 13.6배, 5.9배나 된다.

또 국유림의 임도 밀도는 ha당 4.98m인데 비해 국내 산림 중 74%를 차지하는 공·사유림의 임도 밀도는 ha당 3.6m에 불과하다. 특히 임도 설치에 여러 제약이 따르는 국립공원 지역은 ha당 0.16m에 불과해 대형 산불 재해에 더 취약하다.

우리나라 임도 밀도는 ha당 3.97m로 산림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청 제공
우리나라 임도 밀도는 ha당 3.97m로 산림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청 제공

임도의 필요성은 재난 현장에서도 입증됐다.

올 3월 11일 경남 하동군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을 잡기 위해 헬기 59대와 진화대원, 공무원, 군인 등 2000여 명이 진화에 나섰다. 해가 진 후 헬기가 철수했는데, 화재 현장은 급경사지로 임도조차 없어 진화 차량이 접근할 수 없었다. 결국 화선 가까이 근접해 진화하는 과정에서 진주시청 공무원이 숨졌다. 구급대원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공무원을 산 중턱에서 업은 채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당시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임도만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지난 3월 8일 경남 합천에서 산불은 났을 때 강한 바람으로 급속히 확산됐으나 야간에 임도를 통해 장비와 인력이 투입돼 밤샘 진화작업을 벌인 끝에 일몰 시 10%에 불과하던 진화율이 다음 날 오전 5시경 92%까지 올랐다. 지난해 3월 역대급이었던 경북 울진-삼척 산불 당시에도 2020년에 설치된 임도 덕분에 200~500년 된 금강소나무 8만 5000그루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산림청은 임도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국립공원 등에도 적극적으로 임도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22년 3월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금강송 군락지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특수진화대원이 야간 진화를 벌이고 있다. 산림청 제공
2022년 3월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금강송 군락지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특수진화대원이 야간 진화를 벌이고 있다. 산림청 제공

전문가들은 이미 조성된 임도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조성된 임도에 대한 점검과 관리를 강화해 올해 같은 산사태 피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등 과학기술을 접목한 치밀하고 과학적인 임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임도 지반을 단단하게 보강하고 임도 주위 계곡에 사방댐을 건설하는 등 보강 작업도 중요하다.

산림청 관계자는 “정확한 산사태 피해 원인 파악을 위해 전문가를 포함한 산림피해 조사·복구 추진단을 운영 중이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한 복구 및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임도 관리감독을 강화해 산사태 위험성을 줄이면서 임도의 산불 진화 기능도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성현 산림청장이 지난 5월 산사태 예방을 위한 지원본부를 가동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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