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고래 21마리는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이미지의 환경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0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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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네 아이의 엄마다. 유아와 초등학생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 많은 집들이 예의 그렇듯 주말에는 층간소음으로 이웃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기에 애들을 데리고 바깥나들이를 나가는 편이다. 매주 나가다 보니 지난 10여 년간 애들을 데리고 여느 부모들이 알만한 나들이 후보지는 다 다녀본 것 같다. 놀이공원, 동물원, 박물관, 워터파크, 키즈카페 등등.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가본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수족관일 것이다. 내가 사는 서울과 그 근교 수족관은 물론, 멀리 가족 휴가를 간 곳에서도 수족관이 있다고 하면 빠짐없이 가보았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수족관의 경우 아예 몇 년간 연간회원권을 끊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비용도 적잖이 들고(엄마+아이 넷 입장권) 정작 나는 애들 보느라 수중생물을 차분히 관찰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애들이 워낙 좋아하니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 수족관 대형수조 앞에서 사람들이 수중생물들을 관람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 수족관 대형수조 앞에서 사람들이 수중생물들을 관람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수족관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보통 대형수조다. 작은 어항과 육상생물 우리, 그밖에 자잘한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작게는 한 층, 크게는 몇 층 높이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수조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큰 수중동물들이 산다. 예를 들면 ‘고래’ 같은.

“죽어 나가는 게 빨라” 수족관 고래, 6년간 26마리 폐사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아이 같이 순수한 주인공 우영우의 ‘최애’ 관심사는 고래였다. 아이들도 일반적으로 고래를 좋아한다. 일단 크고! 희귀한 데다, 거대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순한 인상(?) 때문이다. 우리 애들도 종종 콕 집어 “고래가 있는 수족관에 가자”고 조른다. 그리고 고래가 있는 대형수조에 도착하면 ‘고래 초음파 수준’의 고성을 지르며 달려간다. “우~~~와! 고래다~!!”

우리나라 수족관에 사는 고래는 총 22마리다. 아, 제주 바다에 방류하기 위해 적응 훈련을 시작한 제주 서귀포시 퍼시픽리솜 수족관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빼면 21마리다.

방류를 위해 자연 적응 훈련에 들어간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해양수산부 제공
방류를 위해 자연 적응 훈련에 들어간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해양수산부 제공


전국 수족관에 있는 고래를 다 합쳐 21마리니 많은 것은 아니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얘기를 들으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바로 그동안 수족관에서 사망한 고래 수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6~2021년 전국 수족관에서 수명을 마감한 고래만 26마리였다. 현재 남아있는 전체 수족관 고래보다 6년간 죽어나간 고래들이 더 많다. 사망한 고래들의 수족관 평균 체류기간을 보니 5년(반입일 불분명한 5마리 제외)에 불과했다. 수족관에 들어온 지 평균 5년이면 폐사했다는 뜻이다.

최근 6년간 수족관 고래들 폐사일과 폐사 이유. 해양수산부 제공
최근 6년간 수족관 고래들 폐사일과 폐사 이유. 해양수산부 제공


과거에는 ‘돌고래쇼’나 ‘고래타기 체험’과 같이 관람용으로 갇힌 고래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꾸준한 지적으로 이런 고래쇼가 대부분 사라졌는데도, 고래들의 폐사는 계속됐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수족관의 좁은 수조가 그 자체로 고래에게 큰 스트레스라고 주장한다.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고래는 지능이 높고 1년 이동거리가 수만km에 이를 정도로 활동성이 큰 동물이라 전시에 부적합한 종이다”고 말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도 “수족관에서 폐사한 고래 대부분이 폐렴으로 사망했다”며 “좁은 공간, 전시, 체험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우영우에서도 주인공 우영우는 “고래에게 수족관은 감옥입니다!”라고 외친다.

이런 주장들 덕에 2013년 서울대공원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시작으로 총 7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현재 자연 적응훈련을 받고 있는 퍼시픽리솜 수족관 비봉이까지 돌아가면 8마리가 된다.

2012년 서울대공원에서 방류 전 마지막 쇼를 마친 ‘제돌이’(오른쪽에서 첫번째)를 조련사가 보듬고 있다. 동아일보DB
2012년 서울대공원에서 방류 전 마지막 쇼를 마친 ‘제돌이’(오른쪽에서 첫번째)를 조련사가 보듬고 있다. 동아일보DB


현재 수족관에 남아있는 21마리 중에도 방류 검토 중인 고래들이 있다. 서울 송파구 롯데아쿠아리움의 상징, 흰고래 ‘벨라’가 대표적이다. 북극해 같은 추운 바다에 사는 이 고래는 흰고래보다 ‘벨루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초 롯데아쿠아리움이 들여온 벨루가는 3마리였지만, 2마리가 폐사하고 벨라 혼자만 남았다. 자연히 동물단체들로부터 ‘벨라를 즉각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롯데 측은 논의 끝에 2019년 방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방류 의지를 재확인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방류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고래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수족관에 남은 고래들의 체류기간과 연령을 감안하면 논의를 거쳐 방류되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오죽하면 일부 동물단체 사람들 사이에서는 “살아서 수족관을 나가는 것보다 죽어서 나가는 편이 빠를 것”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방류,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에서 고래들 다 돈 주고 사서 바다에 풀어주면 안되나?”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요즘 같이 동물 복지가 화두인 세상에서 21마리 고래를 사서 방류하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방류가 생각만큼 그리 쉽고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롯데를 예로 들어보자. 수족관 측이 벨라를 방류하겠다고 밝힌 것이 2019년이다. 그럼 3년이 지난 벨라는 지금 자유의 몸이 되었을까? 아니다. 수족관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 방류할 곳을 찾지 못해서다.

롯데아쿠아리움의 흰고래(벨루가) ‘벨라’. 동아일보DB
롯데아쿠아리움의 흰고래(벨루가) ‘벨라’. 동아일보DB
벨루가는 본래 우리나라 해역에 사는 고래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방류할 수 없다. 즉 해외로 이송해야 한다. 그런데 해외에서 방류할 곳을 찾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여러 나라를 조사해야 하고, 멸종위기 등급종 이송에 관한 협의도 거쳐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2년간 논의 자체가 어려웠다.

방류 장소를 찾는 것만큼 골치 아픈 문제가 또 있다. 과연 고래가 자연에 잘 적응할지 여부다. 무작정 바다에 갖다 ‘퐁’ 빠뜨려 준다고 자유를 주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라.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대신 평생 온갖 시중을 받으며 살던 사람이 갑자기 서울 도심 한복판에 뚝 떨어지게 되면 혼자 먹고 살 수 있을지. 고래도 마찬가지다. 방류한다면 먹이 잡는 법과 같이 혼자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오랫동안 훈련해야 한다.

훈련을 거친다고 모두가 완벽히 야생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20년간 수족관에 살다 2017년 방사된 남방큰돌고래 ‘금등이’, ‘대포’는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다른 나라 해역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너무 오랫동안 수족관 생활을 한 탓에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폐사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족관에서 거의 평생을 보낸 비봉이도 방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2017년 방류를 앞두고 가두리에서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 동물자유연대 제공
벨라도 같은 이유로 오직 벨루가 ‘보호수역(생추어리)’으로 보내는 것만 검토되고 있다. 생추어리란 바다에 인위적으로 경계를 쳐두고 인간을 접촉한 고래들만 모아 생활하게끔 한 공간이다. 이런 생추어리만 검토 대상으로 하다 보니 방류할 곳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롯데 관계자는 “우선협상 대상자였던 아이슬란드 생추어리 측으로부터 ‘내부 사정으로 인해 절차가 장기간 순연될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그래서 캐나다, 노르웨이 생추어리와 협의를 신속히 진행 중이며 올해 말에는 (어디로 보낼지) 결론을 낼 예정이다”고 전했다.
“수족관, 연구 역할도 하는데…” 신중론도
과연 다 방류해야 할까? 아예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측도 있다. 수족관 업계에서는 일부 종사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수족관 관계자는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공연이나 체험을 빌미로 고래를 학대하는 수족관들은 분명 문제였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위한 설비를 갖추고 다양한 연구 활동을 병행한 수족관들까지 싸잡아 매도당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수족관 관람객들이 조련사의 생태설명회를 듣고 있다. 동아일보DB
수족관 관람객들이 조련사의 생태설명회를 듣고 있다. 동아일보DB


실제 우리나라에 이름난 대형 수족관들의 경우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동물복지를 위해 제시하는 여러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고래의 여러 생태와 습성을 연구한 SCI급 논문을 출간 하는등 지속적인 학술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수족관협회 관계자는 “사람들은 수족관을 전시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전시는 부수적인 것이고 사실 수족관은 수상생물 관련 인력의 연구와 실습을 위한 공간”이라며 “수족관에서 고래를 보고 수상생물 연구자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도 있었을 텐데 수족관 고래를 다 방류하고 나면 앞으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어린이들에게 고래는 TV에서나 보는 동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용락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국가해양생명자원전략센터장은 “미국의 경우 키우던 개체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과 접촉하며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은 동물은 자연개체에게도 어떤 질병을 옮길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3년 방류를 위해 이송되는 돌고래 ‘춘삼이’와 ‘삼팔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2013년 방류를 위해 이송되는 돌고래 ‘춘삼이’와 ‘삼팔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실제 동물보호단체들도 덮어놓고 방류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 동물단체 간부는 “포획 당시 어디서 잡혔는지 알면 원래 무리로 돌려보낼 수 있으니 방류가 수월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방류는 분명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방류를 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지만, 고래에게 ‘진정 만족스러운 방류’가 되려면 철저한 조사와 훈련을 바탕으로 각 고래들에게 ‘맞춤형’ 방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 개정, 바다쉼터… 할 수 있는 것부터
2015년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 방류 당일 영상. 이 중 태산이는 최근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 방류 당일 영상. 이들의 동태를 추적해 온 연구팀은 태산이가 방류 7년 만인 올해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최근 밝혔다.

이렇듯 방류가 쉽고 간단한 문제는 아니기에 수족관에 남은 21마리의 거취도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일단 고래들이 남아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최선은 일부 고래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올 4월 비봉이가 있던 퍼시픽리솜 수족관은 또 다른 남방큰돌고래 ‘태지’, ‘아랑이’ 두 마리를 거제씨월드로 무단 반출했다가 경찰에 고발당했다. 거제씨월드는 2014년 개장한 이래 고래가 10마리 넘게 폐사해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고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다. 고래를 이송하려면 관계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들 두 수족관은 신고를 누락했을 뿐 아니라 관계기관 점검에서도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행태를 막고 수족관 내 동물복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 현재 국회에 올라와있다. 지난해 발의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 그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전시를 위해 수족관이 추가로 고래를 도입하는 것은 금지된다. 고래쇼, 고래 타기체험 같이 고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전시행위도 제한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여야 모두 개정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올해 국회에서 통과가 되어야 하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지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 동물들이 학대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상황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법이 통과되면 인간과 동물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같은 생추어리, 즉 보호수역을 만들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남방큰돌고래처럼 본래 우리나라 해역에 살던 고래의 경우 이런 보호수역을 만들면 곧장 풀어놓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는 일명 ‘바다쉼터’라는 보호수역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올해는 바다쉼터 예산이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내년도 예산에는 신청했으며 현재 적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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