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돈은 내돈?… 노인 ‘경제적 학대’, 뒤틀린 인식부터 고쳐야 [기자의 눈/김소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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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엔 많은 돈 필요없다 여기거나
경제적 권리 주장이 노욕이라 생각
왜곡 벗어나 노인 경제권 존중해야

김소영·정책사회부
김소영·정책사회부
“재산을 빼앗아간 자식들을 ‘몹쓸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설이나 추석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어디다 알리지도 못한 채 혼자 끙끙 앓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한 지역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노인 의사에 반해 재산이나 경제적 권리를 빼앗는 ‘경제적 학대’를 취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경제적 학대가 피해 노인들을 ‘고통스러운 딜레마’ 상황에 빠뜨린다는 점이었다. “이런 자식은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내 자식을 감쌀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은 노인들을 계속해서 피해자로 만들고 있었다.

노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제적 학대를 예방하려면 물론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캐나다, 싱가포르 등 해외와 달리 한국은 이제 막 예방책을 마련한 단계라 갈 길이 멀다. 그런데 노인복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과 학계 전문가들이 제도 마련만큼이나 한목소리로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인식 변화다.

경제적 학대를 연구한 이현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적 학대의 밑바탕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령주의(에이지즘·Ageism)’가 있다”고 말했다. 연령주의는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뜻한다. “노인이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는 건 ‘노욕(老慾)’이다”, “노인에게 왜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냐” 같은 인식이 노인의 경제권을 빼앗는 학대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노인의 경제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욕심’이라고 말하는 건 부당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개인에 대한 존중이 일종의 에티켓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여전히 ‘부모 돈은 내 돈’이라는 생각이 남아있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노인과 그들의 경제권을 존중하는 인식이 있어야 경제적 학대 예방책도 안착될 수 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왜곡된 인식은 언젠가 스스로를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소영·정책사회부 기자 ksy@donga.com
#경제적 학대#재산#노인#노인 경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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