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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CEO 은퇴한 60대, 교사가 되다 [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2022-05-29 07:00업데이트 2022-05-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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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2막]전직 상장기업 대표이사 이대호 씨의 알찬 인생 2막
교사정년 62세 넘어서도 재계약 성공, 취업전담교사로 안착
기업들은 구인난, 학생들은 구직난 겪는 ‘미스매치’ 해결에 팔 걷어
30년 경험과 인맥 총동원해 특성화고 학생들 취업 도와
면접 때는 일일이 자가운전으로 에스코트, 면접도 함께 참여
잔소리 대신 실천하는 솔선수범으로 학생들 변화 이끌어내
“평생 거쳐 온 직업 중 가장 보람 느낍니다”
19일 오후 2시 경 경기도 안산시에 자리한 특성화고 경일관광경영고의 한 교실. 나이 지긋한 교사의 말에 학생들이 귀 기울이고 있다. 이대호 교사(62)가 진행하는 ‘비서학’ 수업이다. 해외 출장을 준비할 때의 행정업무에 대해 강의 중인데,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법 등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 교사가 갑자기 물었다. “이 중에 해외여행 가 본 사람?” 교실 안은 조용하다.

“요즘은 취직만 하면 무조건 최저임금은 보장받아요. 연봉으로 2300여 만 원은 받는 거죠. 여러분이 나중에 휴가 받아서 여행갈 때도 오늘 배운 것들을 써먹을 수 있지요.”

컴퓨터 앞에서 검색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강의 중인 이대호 교사. 사무 행정 비서 업무를 교육하는 수업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교사 정년 훌쩍 넘긴 기간제 교사 2년차

이 씨는 이 학교의 취업전담 교사다. 지난해 초 경기도 교육청 공모에 응해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다. 그의 인생 2막이 극적인 반전처럼 찾아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끝에 “어, 여기 내 천직이 있었네?”라고 깨닫는 느낌이랄까.

“제 인맥과 정보, 경험을 총동원해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매칭시키는 일을 합니다. 30여 년 간 다양한 직장을 경험해왔지만 가장 보람이 느껴집니다.”

주 4시간씩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학생들의 취업처 발굴과 현장실습 운영, 취업 지원에 바친다. 안산 일대는 반월·시화공단과 안양·가산 벤처단지 등 지속적으로 일손수요가 많은 지역.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학생들은 구직난에 힘들어한다. 그는 이런 미스 매치를 해결한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역 특성상 다문화 가정도 많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있습니다. 가장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을 취업시키고, 열심히 회사 생활 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기 그지없죠.”

매일 아침 7시면 학교에 출근해 취업정보실을 개방한다. 집에서 컴퓨터 작업을 못한 학생들을 받아주기 위해서다. 본인도 취업정보를 검색해 학생들에게 맞는 것들을 추려 공지한다. 대졸 위주인 정보의 바다 속에서 ‘고졸’을 위한 취업정보를 솎아내는 작업이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도록 F4 비자 발급도 돕고 있다.

“제 자신이 지방에서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쳐 학생들의 고충을 잘 아는 편입니다.”

간혹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그의 신상을 검색해 ‘대표이사’ ‘벤처기업인’ 등의 수식어를 찾아 들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잊고 산 지 오래”라고 말한다.

그는 고교 졸업 직후부터 여러 회사를 거쳤다. 10여 년간 근무했던 회사는 외환위기(IMF) 때 해체됐다. 2002년 당시 방과후학교 회사인 ‘에듀박스’(현 골드앤에스)에 들어가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당시 그가 런칭시킨 초등학생 말하기 영어학원 ‘이보영의 토킹클럽’은 한때 전국에 500개까지 늘어나며 ‘대박’을 쳤다. 2017년부터는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겨 코딩교육사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2년 만에 사업을 접게 됐다. 동시에 그의 직장생활도 끝났다.

그가 에듀박스 대표이사로 있을 때 출범한 ‘이보영의 토킹클럽’은 전국에 500여개 분원이 설립될 정도로 성장했다. 2012년 제 1회 영어말하기 대회 시상식에서. 이대호 씨 제공

‘2017 이러닝 코리아’ 행사에는 디지털교육협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대호 씨 제공
●구인과 구직의 미스매치
그와 손발 맞춰 일하는 안산시청 일자리센터 소속 박상임 취업지원관은 “학교들도 대개 정년이 지난 사람은 잘 안 쓰려 하지만 이 분은 특별케이스”라고 귀띔한다. 교사들보다 회사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기업 대응에서 유연하고 인맥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등 새로운 취업처를 발굴하는가 하면 취업처 발굴을 위해 화성 용인 당진 등 원거리 출장을 도맡아 동료교사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고 한다.

그는 늘 면접에는 학생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함께 간다. “길도 잘 모를 거고, 선생이 있으면 아이들이 안심도 되지요. 머뭇거릴 때 추임새도 좀 넣어줄 수 있고요. 또 고용주 측도 조심하게 되죠.”

-청년들이 취업시장에서 홀대받는 모습만 봤는데 우리 학생들이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 온실에서 자란 새싹들인데 그냥 내놓으면 다 죽죠. 보호해줘야죠. 늘 사장님들에게 ‘학생들을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서 가르쳐달라’고 당부드립니다.

그는 한국 프랜차이즈산업협회 부회장, 코스닥협회 자문위원 같은 일을 오래 해서 큰 회사 대표나 임원들 사이에 발이 넓다. 여차하면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많은 것. 직장생활할 때 사용하던 마케팅 기법을 응용해 한번 학생들을 보낸 곳일수록 자주 방문해 관심을 보이고 거기서 추가채용이 일어나도록 애쓴다고 한다.

요즘은 특성화고라 해도 졸업생 절반은 진학을 택한다. 지난해 이 학교 졸업생 270여 명중 40%가 취업했고 40%는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취업은 2~3개월의 현장실습을 거쳐 이뤄지는데 학교 측은 사전에 기업 측으로부터 ‘특별한 일 없으면 채용한다’는 약정서를 받는다. 학교와 교육청, 학부모 학생들이 약정이 지켜지는지 수시로 감시한다.

”지역사회와 학교가 ‘빽’이 되는 셈이죠. 정부도 든든히 받쳐줍니다. 업체 입장에서도 특성화고 학생들을 많이 받으면 정부로부터 혜택이 늘어나니 서로가 ‘윈윈’이지요.“
●“얘들아. 딱 3개월만 참아보자”
가장 큰 고민은 애써 취직시키면 1년 안에 30% 정도가 그만둬버린다는 점. 기업 측으로부터도 강력한 항의가 들어온다.

“일껏 일할 만하게 가르쳐놓으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예 ‘공부 못해도 좋으니 10여 년 이상 일할 착실한 직원을 원한다’며 ‘우리가 시집도 보내고 학교도 보내주겠다’고 말해오는 회사도 있어요.”

-요즘 인력송출업체를 통해 젊은 인력을 2년 쓰고 버리는 식의 고용이 많은데, 이 지역은 안 그런가보네요.

“저희는 정규직 아니면 보내지 않습니다. 젊은이의 기회비용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그런만큼 저는 학생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 많겠지만 딱 3개월만 참고 버텨보자’고 말하곤 합니다. 3개월을 버티고 나면 1년을 버틸 힘이 생기고 1년을 일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지요. 3년을 근무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재직자 전형’도 있어요. 인근 한양대(에리카) 한국공학대 등 좋은 대학 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반 년 전 서울 청담동의 회원제 고급레스토랑에 취업시킨 졸업생으로부터 최근 받은 문자 얘기를 꺼냈다.

“‘아직 잘 다니고 있다. 감사하다’고. 집에서 출근하려면 전철 3개 노선을 갈아타고 1시간 반 걸리는데, 잘 버티고 있네요. 그런 친구는 분명히 성공할 거라 봅니다. 출퇴근 왕복 3시간을 견뎌낼 정도 뚝심이라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이겨낼 수 있어요.”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과 야외에서 한 컷. 환갑을 훌쩍 넘긴 교사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을 볼 때마다 그들의 꿈과 희망을 돕고 싶은 의욕이 솟구친다고 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죽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
-인생 2막에 즈음해 중장년들의 가장 큰 고민이 적절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일 겁니다. 드물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으신 듯합니다. 비결은 뭘까요.

“귀를 열어둔 게 도움이 된 것 아닐까요. 우연히 나간 모임에서 이런 직업이 있다는 얘길 듣게 됐습니다. 마침 대학 다닐 때 교사자격증을 따놓았거든요. 평생 꿈꾸던 교직 생활을 했으니 더 이상 욕심이 없어야 하는데 초롱초롱한 학생들을 보며 그들의 꿈과 희망을 어떻게건 돕고 싶은 의욕이 마구 솟구칩니다. 올초 교사정년 나이가 지나 걱정했지만 기간제 교사로 재계약 됐을 때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는 2019년 마지막 직장을 정리한 뒤 1인출판사를 준비했지만 코로나 상황이 겹치면서 아무것도 못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기자본 들여서 하는 일에 집안의 반대가 컸다고. “IMF 이후 회사 차렸다가 망하고 자사주 매입했다가 손해보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부천 자택에서 학교까지 25km를 운전해 출퇴근한다. 국민연금이 올 2월부터 나오고 학교에서 받는 급여는 과거 수입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대만족이다.

-노후준비는 괜찮으신지요?


“많지는 않지만 국민연금도 있고, 개인연금도 조금 있어요. 집 한 채 있으니 여차하면 주택연금 받으면 됩니다. 이제 돈 쓸 일도 많지 않죠. 그래도 안 되면 더 줄여 살면 되죠.”

- 이 일은 언제까지?

“매년 재계약해야 하고 그것도 만 65세면 끝납니다. 제 인생 목표는 평생 일하다 일터에서 죽는 거예요. 앞으로도 보수 안 받더라도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혹시 한국의 중장년 남성에게 많은 ‘일중독’ 아니신지?

“글쎄요. 한국인 대부분이 그런 것 같습니다. 놀 줄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논다면 골프 정도 하는 거고, 혼자서 힐링하거나 휴식하거나 하는 경험은 생소해요. 저는 뭔가 놀 때도 바쁘더라구요.”
● 솔선수범하면 ‘꼰대’가 아니다
그의 일터인 취업정보실은 종일 개방돼 있다. 인터뷰 중 여학생 두 명이 “쌤, 상담 좀….”하고 찾아왔다가 쪼르르 사라졌고 1명이 컴퓨터 작업을 위해 잠시 머물다가 나갔다.

그는 “학교에서 제가 제일 나이가 많고 직급은 제일 낮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매사 낮은 자세로 임합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일이 재미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에게 ‘꼰대’가 아닌 존재로 다가가기 위해 솔선수범에 애쓴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대신 실천으로 보여줘서 뭔가 느끼게 하는 식이다.

“학생들 생일날이나 명절이면 카카오톡으로 인사카드를 보냅니다. 절반 정도는 답이 와요. ‘감사하다’거나 ‘어떻게 아셨어요?’라거나. 이런 것들은 제 나름의 교육이예요. 직장 상사건 부모님이건, 다른 분들께 이렇게 해보라는 메시지죠. 때때로 카드라도 보내 인사하고 긍정적인 관심을 보여드리면 그분들도 너희를 그렇게 대할 거라는. ‘이렇게 하라’고 대놓고 말하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솔선수범해 느끼게 하면 다르죠. 그러니 저는 늘 바쁩니다.”

각자의 인생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 더 좋은 인생은 남의 인생도 소중하게 여기고 키워주려 애쓰는 인생 아닐까. 거창할 것 없지만 나름의 보람을 찾아 분주한 한 교사의 인생 2막이 거기 있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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