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호압사부터 ‘신라’ 호암산성까지… 관악산 자락 설화 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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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스트리트]〈15〉 금천구 호암산 역사문화길

서울 금천구에 있는 호암산은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다. 산봉우리가 서울을 향해 달리는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호암산(虎巖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암산에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호랑이의 기를 누르기 위해 지었다는 호압사와 호암산성(국가사적 제343호)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길(2.4km)이 있다. 이름 그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길 중 하나다.

○ 범 꼬리에 지은 ‘호압사’… 마음 치유 ‘호암늘솔길’


지난달 29일 역사문화길의 출발점인 호압사로 가기 위해 서울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에서 내렸다. 평일 낮이지만 가벼운 차림의 등산객들이 보였다. 마을버스(금천01)로 갈아타고 정류장을 10개가량 지나자 호압사 입구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류장 바로 앞에 호암산문이 있는데 이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조선시대 전통 사찰인 호압사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길을 ‘호압사길’이라고 부르는데, 가을 풍경이 빼어나 ‘가을단풍길’이라고도 한다. 호압사에는 석약사불좌상 같은 불상이나 석탑 등 풍성한 볼거리가 있다.

호압사는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 없다. 또 산등성이에 있어 조금은 가파르다. 일반 사찰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런 만큼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금천구 호암산 ‘호암늘솔길’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이 길은 ‘호압사’와 ‘호암산폭포’를 잇는 약 1km의 산책로로, 계단과 턱이 없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무장애길이다. 호암늘솔길은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을 뜻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금천구 호암산 ‘호암늘솔길’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이 길은 ‘호압사’와 ‘호암산폭포’를 잇는 약 1km의 산책로로, 계단과 턱이 없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무장애길이다. 호암늘솔길은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을 뜻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호압사를 거닐다 절과 이어진 호암늘솔길로 발길을 돌렸다. 1km가량의 길은 호암산 폭포까지 연결되는데 주변은 잣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가는 길에 ‘잣나무 산림욕장’(치유의 숲)이 있어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에 적당하다. 군데군데 쉼터, 정자, 북카페 등도 있다. 모든 구간을 덱형으로 조성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도 숲길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선선한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호암산 폭포와 마주하게 된다. 2011년 산사태로 인해 드러난 자연암반에 만든 인공폭포다.

○ 통일신라 흔적 간직한 ‘호암산성’


폭포를 뒤로하고 호암산성 터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호암산성길로 계단과 산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서울이 한눈에 들어오는 호암산성은 통일신라 때 지어진 성이다. 성 안은 남북으로 길쭉한 마름모 형태로 돼 있는데 비교적 평탄하다. 반면 주변은 험준한 봉우리로 막힌 요새다. 둘레는 1547m인데 육안으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300m 정도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칼바위 조망대’가 방문객을 반긴다. 칼자루를 옆으로 뉘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위 밑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6·25전쟁 때 피란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칼바위 조망대에서 탁 트인 서울 풍경을 감상한 후 조금 더 걸으면 ‘한우물’(제1우물지)이 나온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우물터에 조선시대 증축해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산꼭대기에 있지만 1년 내내 물의 양이 변함없고 항상 맑은 상태로 고여 있다고 한다.

한우물을 지나 우측으로 가면 ‘북문 터’와 귀여운 강아지 모양의 ‘석구상’이 나온다. 관악산의 ‘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경복궁의 해태상과 마주하며 함께 ‘서울의 화재를 막아준다’는 재미난 설도 있다. 호암산성길 끝에는 ‘건물지’와 ‘제2우물지’가 있다. 건물지에는 ‘방’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네모 공간이 남아있다. 제2우물지에선 과거 청동숟가락 등 유물들이 출토되기도 했다. 김정희 마을해설사는 “펜스를 쳐놨지만 여전히 산성 위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점점 산성이 내려앉고 있다”며 “호암산성이 아차산성처럼 시민들의 사랑받는 휴식처로 보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메트로 스트리트#금천구 호암산 역사문화길#관악산 설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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