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8개월째 내 집 못들어가”…유치권 싸움에 등 터지는 주민들[사건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5일 1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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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바리케이드 동원… 경찰 출동 밤새 충돌 막아
2014년 시행사 부도 뒤 소유권은 신탁사로… 관리권 주장 업체만 2곳
거주자 “용역이 대문에 잠금잠치 용접, 전기 끊어”
업체 “공사대금, 용역비 못 받아 유치권 행사”
주변 주민 “불안해서 못 살겠다”


“밀어! 몸으로 밀어!”, “당신들 누구야?”

2일 오후 2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상복합건물 ‘가야위드안’ 지하 2층의 좁은 통로. 건장한 체격의 남성 10여 명이 건물 방재실로 가는 철문을 강제로 열고 들이닥쳤다. 문을 막고 있던 남성 3명이 힘에 밀려 뒷걸음질쳤다. 진입하려는 이들의 손목에는 난투가 벌어졌을 때 피아를 식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청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방재실엔 노란 팻말에 검은 글씨로 ‘유치권 행사중’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의 관리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주영인더스트리(주영)와 신라씨앤디(신라)가 각각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방재실에 설치된 건물 폐쇄회로(CC)TV 모니터를 서로 장악하려고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13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가야위드안 전경. 이곳은 용역 세력 간 충돌이 반복되고 있어 주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13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가야위드안 전경. 이곳은 용역 세력 간 충돌이 반복되고 있어 주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쇠막대가 떨어지는 소리와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욕설, 굵은 비명이 들렸다. 한 남성이 방재실 앞에 설치된 철제 바리케이드를 뚫기 위해 기어오르는 순간 누군가가 소화기를 분사했다. 매캐한 소화기 분말이 좁은 복도를 뒤덮어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콜록대며 물러났다.

잠시 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충돌은 잦아들었다. 관악경찰서 당곡지구대 경찰들이 추가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다음날까지 방재실 문 앞을 지켰다.

●“집 비운 새 잠금장치 걸어”… 집 뺏겼다는 주민들
서울 복판의 주상복합 건물에서 유치권과 관련한 분쟁이 벌어지면서 용역 직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수개월 째 지속되고 있다. 거주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거나 임의로 전기를 끊어 쫓아내려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2014년 시행사의 부도 이후 복잡한 권리관계 변동이 이어졌고, 소송전도 계속되는 탓이다.

최근에는 건물 준공 당시 공사대금과 용역비를 받지 못했다는 신라가 전체 243개 세대 중 상가와 아파트 등 60여 곳과 공용공간인 방재실 등을 대상으로 유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유치권은 물건 점유자가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해당 물건을 맡아둘 수 있는 권리다. 주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시공사 등이 건물 일부를 점유하며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충돌이 지속되면서 주민 피해만 커지고 있다. 분양을 받았던 이들(수분양자)과 세입자 중 일부는 신라가 집을 강탈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세입자 A 씨(48)는 “지난해 7월 신라 측 용역 직원들이 밀고 들어와 나를 쫓아낸 뒤 대문에 잠금장치 3개를 용접해 들어갈 수가 없게 해 놨다”며 “8개월째 내 짐이 모두 있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본보 기자에게 말했다.

A 씨의 주장에 관해 신라 측은 “우리가 2014년 시행사로부터 받은 사용대차계약을 근거로 A 씨와 주택 사용대차계약을 했는데, A 씨가 주영 측과 따로 임대차 계약을 하려고 해 내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가 7월 쫓겨난 집. 잠금장치가 3군데 용접돼 있다.
A 씨가 7월 쫓겨난 집. 잠금장치가 3군데 용접돼 있다.


이 건물 9층에 거주 중인 이모 씨(48)는 “신라가 관리실을 장악하고 전기를 차단해 우리 가족을 쫓아내려고 한다”며 “암 투병 중인 아내와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데리고 거리에 나앉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2012년 당시 시행사였던 주식회사 남부중앙시장으로부터 한 채를 3억8600만 원에 분양받았다. 그러나 시행사 부도로 2014년 건물 공사가 중단되자 불안한 마음에 2016년 아직 준공되지 않은 집에 가족과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 씨는 “공급면적이 118㎡인 세대를 분양받았는데 계약서상 적힌 호수를 찾아가보니 실제로는 49㎡여서 계약서상 적힌 면적과 같은 세대에 들어가 살아왔다”고 했다.

이 씨의 주장에 관해 신라 측 관계자는 “이 씨가 살고 있는 집은 다른 수분양자가 있는 상황이라 퇴거를 요구한 것”이라며 “전기를 일부러 차단한 적은 없다. 기계적 결함으로 인해 차단됐을 수는 있다”고 했다.

집집마다 붙어 있는 단전 예고 안내문.
집집마다 붙어 있는 단전 예고 안내문.


●주변 주민들 “밤만 되면 싸우는 소리”


2일 방재실을 장악하려는 싸움이 벌어지던 시각 이 건물 2층엔 강제 집행을 위해 서울중앙지법 집행관과 법원이 고용한 용역 직원 수십 명이 진입했다. 이곳 상가에도 ‘유치권 행사 중’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건물 소유자인 아시아신탁이 2021년 3월 세입자로부터 건물인도 판결을 받은 곳이다. 하지만 유치권을 주장하는 신라 측이 2개월 전부터 이곳을 점유해 왔다. 법원 집행관이 건물인도 강제 집행을 위해 문을 열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신라 측 관계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충돌이 이어지자 주변 주민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13일 건물 인근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늦은 밤엔 가야위드안 주변으론 잘 안 가려고 한다. 밤만 되면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덩치 큰 남성들이 주변을 순찰하듯 돌아다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건물 지하에 마트가 있어 가끔 이용하는데, 마트 앞에서 용역 직원들이 다투고 있어 도로 돌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급기야 관악경찰서는 여러 수사 기능을 묶어 ‘가야위드안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든 상태다. 해당 건물과 관련 다수의 형사 사건이 접수돼 있고, 복잡한 민사 재판 절차가 남아 있는 것을 고려했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민사 권리 관계는 서로의 입장 차이가 너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접수된 형사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계약관계 두 회사 소송전 벌여

가야위드안은 분양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며, 소유권은 현재 신탁사 아시아신탁이 갖고 있다. 재건축 시행을 맡은 주식회사 남부중앙시장은 2008년부터 분양자를 모집해 2010년 착공에 들어갔지만 이후 2012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2014년엔 시행사 대표가 뇌물죄로 구속되며 소유권이 넘어갔다. 준공에도 차질이 생겼다. 골조만 갖춘 채 미준공 사태로 남아있던 건물에 용역 세력이 자리를 잡아 불법 임대 사업과 유흥업소 영업 등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이 세력이 조직폭력배와 관계돼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9년 4월 주영인더스트리(주영)가 아시아신탁으로부터 가야위드안의 1순위 우선수익권을 낙찰받으면서 정상화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수익권이 있으면 신탁사가 건물을 공매할 시 수익을 우선 보장받을 수 있다. 주영은 건물을 점거하고 있던 용역 세력을 대부분 밀어내고 마무리 공사를 진행해 이듬해 7월 준공에 이르렀다. 이때 협상과 마무리 공사를 맡은 곳이 신라다. 주영은 신라에 용역비 70억 원과 마무리 공사대금 30억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사업약정서를 썼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무렵 주영과 신라 두 회사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주영은 신라가 상가 일부를 동의 없이 무단으로 임대를 주는 등 계약을 위반했다며 신라에 대한 권한 위임을 모두 철회한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지난해 4월 보냈다. 신라 측은 “주영이 마무리 공사대금을 9억2000만 원밖에 지급하지 않았다”며 유치권을 주장했다. 주영 측은 “공사대금 30억 원은 모두 지급했다. 용역비는 계약 위반이기 때문에 줄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주영 측은 신라에 대해 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 및 용역비와 공사비에 대해 채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치권자와 임대-사용 계약 안돼”
전문가들은 권리관계가 복잡한 건물에 세를 드는 것은 가능한 피하고, 불가피할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전문 자연수 법무법인의 이현성 변호사는 “유치권은 변제받지 못한 채권에 대한 담보물권일 뿐”이라며 “자신이 유치권자라며 사용대차계약 또는 임대차계약을 통해 건물을 빌려주겠다고 한다면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주상복합 등을 분양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전문 엄정숙 변호사는 “재건축 대상 건물의 등기를 떼 소유권을 정확히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등기 상 소유권자로 등록돼 있지 않으면 분양할 권리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현성 변호사는 “건축물에 대해 분양 계약을 맺을 때는 확실한 법률상의 권리를 가진 주체와 계약을 해야 한다”며 “최근 대부분의 재건축 사업이 신탁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권리를 가진 신탁사가 계약서상 매도인으로 적혀 있는지, 자신이 분양대금을 입금하는 계좌가 신탁사 계좌가 맞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철골 구조물로 막힌 가야위드안 비상구. 한 아파트 관계자는 “용역 세력이 건물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철골을 설치했다가 뜯어낸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철골 구조물로 막힌 가야위드안 비상구. 한 아파트 관계자는 “용역 세력이 건물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철골을 설치했다가 뜯어낸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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