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는데 힘 보태려” 농업용-레미콘 트럭에 물 싣고 산불현장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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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앞에서 더 뜨거운 이웃사랑…소방인력 숙박비 대납 ‘착한 노쇼’
“이재민에 무료식사 배달” 식당도…재해구호協 “55만명 343억 기부”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주민 최민주 씨가산불 진화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화물차 물탱크에 물을채우고 있다. 울진=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주민 최민주 씨가산불 진화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화물차 물탱크에 물을채우고 있다. 울진=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이렇게 물이라도 나르면서 산불 진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9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의 한 비닐하우스 앞. 산불이 나서 대피한 다른 주민들이 엿새째 돌아오지 않은 마을을 주민 최민주 씨(50)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옷이 흠뻑 젖은 최 씨는 농수 공급용 호스를 들어 자신의 1t 화물차에 실린 물탱크에 열심히 물을 채웠다.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마다 찾아가 소방차 등 진화 장비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며 “지금도 빨리 물탱크를 채우고 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최 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야산 곳곳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연기가 나고 있었다.

최 씨는 “끝없이 물을 나르다 보면 춥고 힘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체력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이웃의 집을 지킬 수 있다면 물값, 기름값쯤은 내 돈으로 내도 괜찮다”고 말한 다음 서둘러 산불 현장으로 떠났다.

울진에서 발생한 역대급 산불이 6일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산불 진화와 이재민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지역 레미콘 차량 운전사들은 산불 진화 헬기가 사용할 물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팔을 걷어붙였다. 레미콘 차량에 물을 가득 채워 죽변비상활주로에 설치된 헬기용 임시급수조에 물을 공급하기로 한 것. 물을 나르던 레미콘 운전사 김모 씨(48)는 “생계 챙기는 걸 잠시 미루고 진화 작업을 최대한 도운 후 공사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영업자들도 의기투합했다. 울진읍의 한 중국음식점 업주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산불 작업을 하시는 분들과 이재민분들 식사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라는 공지를 띄우고 음식 무료 배달에 나섰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음식은 안 주셔도 된다”며 음식값을 결제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업주 A 씨는 “실제 주문 없이 음식값으로 결제한 금액에 개인 기부금을 더해 500만 원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일명 ‘착한 노쇼(no show·예약불이행)’ 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숙박 예약 플랫폼을 통해 울진 지역 숙소를 예약한 뒤 실제로는 방문하지 않은 채 진화 인력이나 이재민이 대신 묵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는 노쇼 운동을 울진 지역까지 확대한 것. 낚시인 봉사단체 ‘낚시하는 시민연합’의 김욱 대표(54)는 “수많은 낚시인이 울진 등 동해안 지역을 매년 찾고 있다. 도울 방법을 찾다가 노쇼 운동을 고안했다”며 “현재까지 4곳의 예약을 지원해 드렸고 여러 회원이 동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9일 오후 3시까지 기부에 참여한 이들은 55만2933명, 기부 금액은 약 343억 원에 달한다.


울진=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울진 산불#이재민#산불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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