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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대법 “기업 존립위기 아니면 신의칙 적용안돼”… 사측 승소 어려워져

입력 2021-12-17 03:00업데이트 2021-12-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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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현대重 6300억 통상임금 소송’ 勞 손들어줘
“명절상여금 등 소급분 추가지급해야
경영상 어려움 극복 가능하다면
신의칙 이유로 미지급 안돼” 파기환송
최대 6300억 원 규모의 추가 임금 지급 여부를 놓고 9년 가까이 이어진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이 근로자가 승소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됐다. 특히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해 통상임금 소급분 지급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신의칙 위반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처음 제시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12년 A 씨 등 근로자 10명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명절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임금을 소급 지급해 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2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추가 수당의 규모와 실질임금 인상률 등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를 예견할 수 있었고 극복할 수 있다면 신의칙을 이유로 근로자의 수당 청구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측이 지급할 추가 임금은 이자를 포함할 경우 7000억 원대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당사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重 통상임금소송 勞승소

현대중공업은 매년 800%의 상여금을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100%에 해당하는 명절 상여금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고 퇴직자 등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은 2012년 “명절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소급분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사측은 소급분 비용을 6300억 원, 근로자 측은 4000억 원으로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은 근로자 측이 승소했지만 2심은 “소급분을 지급하면 회사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을 제기한 이후 9년 만, 2016년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이후 5년 만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이다.

○ 대법, 신의칙 위반 구체적 기준 첫 제시
대법원은 2심 판결과 달랐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경영 상태는 2014, 2015년 악화됐는데 그 원인은 2012년부터 주요 수출처인 유럽에 경기 침체가 찾아왔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경영 악화는 현대중공업이 예견할 수 있던 사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추가 법정 수당의 연도별 총인건비와 당기순이익 대비 비율, 회사의 사업 규모와 손익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추가 법정 수당 및 퇴직금의 지급으로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시적인 경영 악화만이 아니라 기업의 계속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과 신의칙에 대한 주요 쟁점을 대부분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통상임금의 정의와 추가 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것이 노사 간 신의칙에 위반하는 것인지에 대한 법리는 2013년 처음 나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인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과 근로자 간 소송에서 통상임금에 대해 “근로자가 소정 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인 소정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 전합은 추가 법정 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민법상 신의칙에 위배돼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측이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으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신의칙에 반한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논리였다.

○ 2019년 “신의칙 엄격” 판결 이후 기업 패소
2013년 대법원 전합 선고 이후 기업 측은 “추가 수당 요구는 신의칙 위반”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신의칙 위반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2019년 대법원 소부(小部)는 “근로자의 추가 법정 수당 청구가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해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추가적인 법리 판단을 했다.

이후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통상임금 소송에서 주요 기업이 근로자에게 추가 법정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랐다. 지난해 8월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이 대표적이다. 대법원 1부는 기아자동차와 근로자 간 소송에서 “재산정된 통상임금에 따른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고 해서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근로자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한진중공업, 동국제강, 만도 등의 기업도 비슷한 이유로 대법원에서 패소 취지 판결을 받았다.

현대중공업 판결로 신의칙 위배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생겨 기업들의 승소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대법원 소부가 아닌 전합이 통상임금과 신의칙에 대한 법리를 추가로 내놓을 수 있다. 정기 상여금에 재직 조건이 붙어 있을 경우의 통상임금 효력 등에 대한 사건이 지난해 3월 대법원 전합에 회부돼 심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임금
일정 조건에 해당하는 근로자에게 일률적, 정기적으로 성과에 상관없이 사전에 확정해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휴일 및 야근수당, 퇴직금 등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계약 등 법률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해 성의 있게 행동해야 하는 민법 제2조 1항의 규정. 회사의 경영 사정이 나쁠 때 노조가 지나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이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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