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정한 나눔 통해 글로벌 미래인재로 성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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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에듀]

박장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언론담당관은 “청소년 시절의 필란트로피 커뮤니케이션 경험은 공생의 가치를 체득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박장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언론담당관은 “청소년 시절의 필란트로피 커뮤니케이션 경험은 공생의 가치를 체득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재난지원금, ESG, 자선냄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수혜자는 중첩되지만 1차적으로는 ‘어려운 이웃’이다. 경제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도 나아지고 있지만, 양극화의 그림자는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1㎏당 50원짜리 폐지 줍는 어르신들과 퇴직금 50억 원의 청년이 공존하는 세태 속에서 최저 생활수준(National minimum)에 대한 합의조차 보편적 기대수준과 동떨어져 있다.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세계인이 공감하는 K콘텐츠의 서사에 부자와 빈자의 격렬한 대비가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을 보면 어쩌면 ‘격차’는 전 세계가 동시에 앓고 있는 팬데믹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비극적인 간극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경제적 효율성만을 궁극적인 성패의 척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파커 파머를 비롯한 석학들의 분석이다.

필란트로피는 생소한 개념이다. 사전적으로 ‘독지’, ‘자선’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사회 들어서는 실상 광의적으로 향유되고 있다. 페이턴과 무디는 필란트로피에 대해 ‘공익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자 사랑의 실천’이라고 규정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착한 어른이 될 것을 바라지만 그 뜻을 전달하거나 방법을 가르치는 데 인색하다. 가뜩이나 피곤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조차 버거운 미래세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란트로피가 구현되는 사회 영역은 분명 확장일로에 있다. 학자들은 기부산업과 자선사업을 넘어서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까지도 불분명하게 만드는 개념으로 필란트로피를 해석하기도 한다. 임팩트온에 따르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지구환경을 다룬 그린 필란트로피 분야에 10억 달러를 기부할 것이라고 하고, 구글은 지난해 ESG 구현을 위해 ‘다양성-포용성 전담팀’을 선보인 바 있다. 유럽연합(EU)이 7월 공개한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 역시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대한 판별 원칙을 제시하며 인간의 기본 욕구에 대한 접근권,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등을 언급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하버드 공공정책대학원 케네디스쿨 학생의 반은 민간부문 출신이라고 한다. 이는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익을 구현하는 필란트로피의 가치가 비즈니스맨에게도, 과학자에게도, 금융인에게도, 세상 그 어떤 직업군에서도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마도 인류가 누리는 부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정한 부의 재분배 이슈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시대담론으로 확산될 것이다. 최근 대두된 시진핑의 공동부유(共同富裕) 역시 표면적으로는 부의 재분배 문제를 직격한다. 숨은 의도가 어떻든 간에 정부도, 기업도, 국제사회도 필란트로피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제원조 공여국의 위상에 걸맞게 해외기부금과 ODA 기금의 규모는 아시아 2위에 해당하지만, 개인의 기부 경험을 나타내는 세계기부지수 순위는 지난 10년 평균 126개국 중 57위에 불과하다. 어금니아빠, 정의연 등 심심치 않게 들리는 기부금 유용 사건은 우리 기부문화의 기형적 모습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ESG 관련 법안은 규제가 지원보다 10배가량 많다고 한다. 일부 기득권층은 그들의 부정한 일을 가리고, 잘못을 상쇄하기 위한 도구로 ‘사회 환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름 없는 독지가의 남 모를 기부 같은 따뜻한 소식만이 이따금씩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가늠할 뿐인데, 그마저도 미디어의 관심에서 적잖이 멀어져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필란트로피 토양은 이토록 척박하고 심지어 왜곡되어 있다.

1980년대 시장 승리주의 속에서 미국 사회는 사그라지는 시민참여와 공동체의식에 대한 경각심으로 필란트로피를 대두시켰고, 청소년 교육과 학문의 영역에서 그 체계를 공고히 했다. 사회적 약자를 선별하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며, 공여자를 유치하고 서로를 연결시켜 선한 부의 재분배를 주체적으로 도모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지난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그럼에도 청년과 청소년 시기에 모금, 배분, 봉사 등을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필란트로피 커뮤니케이션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포용이 곧 공생이고, 배타는 공멸’이라는 진리를 본능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들이 겪는 직간접적 경험을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진단하든지, 연민의 상상력으로 느끼든지 간에 필란트로피 커뮤니케이션은 현상에 대한 실체적 움직임을 수반한다. 이러한 학창시절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것이 앞서 소개된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과 국제기구의 숨은 주역들이다. 글로벌 미래인재 양성에 필란트로피가 빠질 수 없는 자양분이 될 것이 자명한 이유다.

익히 들었을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약자인 어린이에 대한 공동체적 인재 양성의 가치를 지향한다. 마이클 샌델 역시 명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담론의 한계를 경고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자, 다시 생각해보자. 재난지원금, ESG, 자선냄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주체도 다르고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각양각색이지만 최종 수혜자는 동일하다. 바로 우리의 미래 세대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다.


박장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언론담당관
#재난지원금#esg#자선냄비#필란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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